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못 가는 세상

#03. 선비도 금수저 집안만 살만했다지

by 목양부인



나는 중간이 목표다.


그저 보통의 사람.

남들과 차이 나지 않게 평이한 삶.

사람들 사이에 잘 섞여서 튀지 않고 조화롭게.

평균치에 가까운 안정적인 포지셔닝이 좋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옛말은

오버하거나 무리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며

낙도를 지향하는 나의 가치관에 가깝다.


토너먼트식 경쟁도 싫고 돈이 목표도 아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룰을 지키며 계속 나아가면

돈은 언젠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줄 알았다.



하여, 내가 제일 렸던 테크 방식은

누군가는 꼭 손해를 보는, 그러니까 뒷사람의

눈탱이를 치고 부를 얻어 시세차익을 누리는,

이를테면 주식, 코인, 그리고 부동산이었다.


대책 없이 어리석고 철없는 식견이 아닌가!


자연인으로 숲에 적응하며 살 게 아니고서야

움직이고 성장하고 한 계단 씩 올라가야다.


가만히 서 있으면 떠밀리다 떨어져 죽는 게임.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판 맵 아닌가!







학개론에서는 갭을 지렛대 이론으로 풀이했다.

자기 자본이 부족하면 부채를 이용해 산다고.


집을 몇 채씩 가지고 갭을 통해 사업소득을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너무나도 올라버린 집값에

갭을 통해서라도 더 어릴 때 집을 확보하지

못한 과거의 에게 화가 나고 후스럽다.


이제는 돈이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집이 집을 사주는 시대라 할 수 있으니.

쇼핑하듯 집을 사는 날이 온 것이다.







그런 세상과 담을 쌓아두고는 마치 은둔자처럼

집에서 공부면서 생각이 점점 삐뚤어져간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빠듯하게

진도를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동영상을

1.5배속으로 8강씩 연이어 보고는 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집값 랠리는 쉬지 않았다.


메뚜기마냥 펄쩍펄쩍 잘도 튀어 오른다.

어디로, 언제 튈지 방향도 가늠할 수 없다.


그럴수록 내가 엄한데 시간 쓰는 게 아닌지

답답하고 불안한데, 속도 모르고 엉덩이가

찹쌀떡처럼 납작하게 퍼져고 있다.


어떻게 운동해서 뿔낸 엉덩이인데...

앉아서 공부하니 질펀해지고 살이 오른다.

승모근 또한 귀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운동은커녕 스트레칭조차 소홀했던 것.


옷태가 달라자 밖에 나가기도 려진다.

랜만에 나 얼굴 보자는 약속도 귀찮고

별 뜻 없는 말에도 기분 상하는 날이 많다.


단톡방 안에서조차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집 얘기를 하면 왠지 대화에 끼기가 어렵다.

아는 것도, 경험도, 가진 것도 없기 때문에.


인성이 망가지는 것 같고, 점점 더 부정적인

마인드로 나를 어둡게 칠해가는 느낌이 든다.

입문까지만 볼 걸 괜히 공부를 계속한다 해서

스스로 히키코모리의 삶을 만들고 있나?

공무원, 임용고시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인성 파탄에 반쯤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내 집 한 칸 없다는 불안감.

남들 다 준비했는데 나만 뒤처지는 열등감.

내일 되면 집값이 또 오를 것 같은 초조함.

그리고 주눅.


주눅이 든다.

그야말로 위축되는 것 같다.

내 집이 없으면 밥을 먹어도 허하고

근거 없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가족운동회 나만 엄마없이 혼자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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