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화백에 대하여
2022. 12. 18
"아휴."
아쉬움이 짙은 밤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려 하는데 보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결제까지 마쳤지만 해외 접속이라 스트리밍이 안된다고 한다. 미리 알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의 덤벙거림을 자책하고 있던 밤이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자 평안남도 맹산군 출신인 김창열 화백에 대한 이야기다. 그토록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김창열 화백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우리 할아버지랑 같은 고향 출신이니까. 김 화백이 맹산에 대해서 언급했을까, 언급했다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가 너무 궁금했다. 뭐라도 더 단서를 얻고자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다음에 한국에 들어갈 일이 생기면 그때 봐야겠거니 하며 예고편이나 리뷰 등을 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평점이 대단하다. 어찌나 더 간질 나게 만들던지.
김창열 화백과 이 다큐멘터리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인터넷에 "맹산 출신 인물"이라고 검색했더니 나무위키는 아래의 인물들을 알려주었다.
김동길 - 영문학자, 전 연세대 교수. 아래 김옥길의 남동생.
김옥길 - 전 문교부 장관, 이화여대 총장. 위의 김동길의 누나.
김창열 - 화가. '물방울 화가'로 알려져 있다.
(*출처: 나무위키, '맹산군')
김창열 화가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물방울 그림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정작 작가의 이름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아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포스터를 접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 소리는 금세 휘모리장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김 화백의 둘째 아들인 김오안(Oan Kim)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작년 9월에 선보였다. 김오안 감독과 부이요 감독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봐야 한다는 확신을 주었는데, 무언가 김 감독이 가지는 궁금증들이 나의 궁금증과도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할아버지의 고향을 궁금해하듯, 김오안 감독은 아버지의 성격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평생 물방울만 그리는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아버지의 성장 배경을 궁금해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더 파고들게 되는 비극적인 한국사. 그 비극적 시간들이 아버지의 성격, 인생, 작품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이 내가 지난 4개월 동안 겪은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김창열 화백을 혹시 알고 있었을까 하여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기억하시길, 김창열 화백과는 1살 차이가 나며,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점. 다만, 김 화백이 초등학생 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그 후로는 교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할아버지는 김 화백이 향우회 활동에 소극적이고 향우회 지원에 인색했다며 김 화백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으셨다고 한다.
향우회는 할아버지가 이미 멀어진 고향과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담긴 조직이다. 할아버지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1970년대에 맹산군 지덕면 향우회의 초대회장이셨다고 한다. 남한에 지내는 고향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아무래도 김 화백은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 같다. 다만, 김 화백이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내느라 향우회 활동이 어려웠다는 점을 할아버지가 아셨는지는 의문이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작은 오해를 하고 계셨을 거라 추측을 해본다.
맹산, 대체 그곳은 어떤 곳일까?
할아버지가 고향을 다시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시지만 않으셨어도 이렇게까지 궁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듯, 이제는 할아버지의 부탁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계속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4개월간 가깝고도 먼 이북 땅 어딘가를 찾아 헤매며 알게 된 이야기들, 그 수수께끼의 공간을 상상하며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