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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100 인생 그림책>

살면서 뭘 배웠나요? <100 인생 그림책>

by 김경애

아들이 추천한 <100 인생 그림책>

“엄마, 이 그림책 좋아 보이는데, 아세요?”

올봄, 남도를 여행하던 아들이 카톡으로 그림책 사진을 보내며 함께 온 글입니다. 카페에 들어갔는데 이 그림책이 있어 읽어 보았다는군요. 덕분에 알게 된 <100 인생 그림책>입니다.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고 또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아는 게 참 다행이네요. 이렇게 관심을 받으니 말입니다. 이 기회에 제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도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겠습니다.

그런 <100 인생 그림책>을 소개하는데 딱 좋은 시점을 만났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거든요. 분가하는 아들을 위해 묵은 사진들을 정리하였습니다. 필름으로 인화했던 사진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까지 주욱 살펴보는데 딱 ‘인생 그림책’ 같았습니다. 아들의 갓난아기 모습, 돌 사진, 유치원을 비롯한 여러 졸업 사진들.... 사진을 보면서 덜컥 덜컥 자주 감정이 걸려들고, 그 무렵의 에피소드를 남편과 나누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진도가 영 나가지 않더라고요. 가족사, 저의 개인사를 되새겨 보는 뜻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 그림책’처럼요.



100장의 그림으로 보는 <100 인생 그림책>

글을 쓴 하이케 팔러는 독일 출신으로, 잡지〈디 차이트>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조카를 보았을 때 이 책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네요. 아기의 앞에 얼마나 기묘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반은 부러운 마음, 또 절반은 그 애가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는군요.

저자는 이 책을 위해 세상 여러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초등학생과도 아흔 살 할머니와도 부지런히 이야기를 나누었다네요. ‘살면서 뭘 배웠는지’를 꼭 질문하면서요. 그들의 답을 책에 다양하게 녹여내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주인공은 여럿입니다. 책은 태어난 순간부터 99세까지의 인생을 100장의 그림으로 담아내었지요. 삶이 흐르는 동안 세상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읽어집니다.

그럼 그림책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살면서 뭘 배웠는지 만나볼까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 ‘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걸?’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어 넣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9월 그림책 모임 때 들고 가서 시도해 보아야겠습니다.

0세. 난생처음 네가 웃었지 널 보는 이도 마주 웃었고



2세. 벌써 공중제비를 넘을 수 있니? 그래. 하지만 그렇게 네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3세.....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4와 3/4세. 어떤 맛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됐니?


6세. 일곱 시면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되겠지. 이제는 학교에 다녀야 하니까

7세. 세상은 너에게 정말 새로울 거야. 모든 걸 꼼꼼히 들여다보네



7세와 98세 때의 손입니다. 분홍의 포동포동한 손이 깊은 주름의 황색으로 바뀌었네요. 어린이 손도 예쁘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아흔여덟의 손도 좋아 보입니다. 저 두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요?


9세. 아메리카, 이탈리아, 베를린, 휘텐발트, 지중해, 스머티노제 섬, 카이저 빌헬름 섬, 군 굼파스, 틴타겔, 잉골슈타트, 북극. 세상은 얼마나 넒은지 몰라!



넓은 세상을 지도가 아닌, 다양한 나뭇잎으로 표현한 작가의 발상이 멋집니다!

12세. 벌써 엄마 아빠보다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구나

13세. 그런데 엄마 아빠는 대체 언제쯤에야 친구들 앞에서 널 ‘우리 귀여운 토끼’라고 부르지 않게 될까?

17세.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야. 네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18세. 믿을 수 없는 일은 또 일어나. 갑자기 커피가 좋아지는 일이.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마음에 드는 구절입니다. 발코니에 나와 서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아주 멋있네요! 쓴 커피의 맛이 좋아지는 건 인생을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죠?

19세. 가끔은 네 자신이 싫어지기도 할 테고. 사람도 완전히 변할 수 있을까?

22세. 어딘가로 나아가고 싶다면 아무리 작은 발걸음이라도 깊이 생각해 보고 떼어야 해

신중한 태도도 좋지만, 저는 젊은이들이 무모한 발걸음도 떼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스물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마구 부딪히며 탐색해 보라고 말입니다.

23세. 생전 처음 너는 다른 이에게 너에 대해 뭐든 털어놓게 돼

24세. 누군가와 이토록 가까운 적은 없었을 거야

25세. 너희는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 하겠지

26세. 아니면 안 그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까?

아! 사랑에 빠졌군요. 그리고 아픈 이별도 배우고요....


29세. 미처 배우지 못한 한 가지. 토요일 저녁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우울해지지 않는 법

30세. 행복이란 상대적이라는 걸 배웠지?

32세. 아이를 가졌니?



33세. 잠이 모자라도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백번 공감합니다!

36세. 꿈 하나가 이루어졌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를 거야

39세.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거야

40세. 누군가를 이토록 걱정한 적도 한 번도 없었을 거고

41세. 산다는 건 정말 스트레스 넘치는 일이지

45세. 지금 그대로의 네 모습을 좋아하니?

49세.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잔다는 게 얼마나 호사를 누리는 일인지도 배울 거야

여러분도 고개가 끄덕여지시죠?


52세. 이루지 못한 꿈도 많지만....

53세. 괜찮아.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다행히 저는 이 부분에서는 나름 달인입니다.


55세. 큰 것들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새로운 각도에서 보아야 해

60세. 너도 이제 예순이구나. 하지만 어릴 때 보았던 60대 할머니가 네 자신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지?

66-67세. 너는 어쩌면 세상을 발견할지도 몰라

68 – 69세. 어쩌면 너만의 정원을 발견할 수도 있어

70세. 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지? 생전 처음 해본 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을 거야

아직 살아보지 못한 노년의 삶을 기대합니다. 낯선 일들을 시도해 보면서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71세. 모든 일이 힘겨운 때가 있겠지

72세. 그러다 모든 일이 가뿐해지는 때도 있고

73세. 사는 동안 뭔가 다른 일을 해봤더라면 싶은 게 있니?

75세. 이제는 놓는 법도 배워야 해. 아직 공중제비를 넘을 수 있니?

놓는 법을 일흔다섯이 아닌, 지금 당장 배우려 합니다. 공중제비를 넘을 수는 없지만, 대신 좋아하는 요가로 몸과 마음의 유연함을 지키면서요.

77 –78세.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배울 수도 있어

81세. 이제는 나이를 한해 한해 세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보내는 순간순간을 세고 있다고?

좋은 태도네요.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니까요.


82 – 83세. 뭘 하든 시간은 전보다 곱절이 들지

87 – 88세. 어쩌면 같이 사는 사람이 몸져누울지도 몰라

89세. 정말 힘든 일이지

90세. 인생은 뒤죽박죽이야



글은 '인생은 뒤죽박죽이야'라 말하지만 그림은 아닙니다. 가시 많은 줄기 사이로 푸른 잎과 분홍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네요. 우리 인생처럼요.


91세. 오랜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92세. 죽음? 그래! 오고 있어

93 –94세. 빈 나무딸기잼 병을 지하실로 가져다 놓으면서 너는 생각하지. 누가 알겠어, 이게 또 필요할지?

97세. 사람들이 온갖 질문을 퍼붓지. 인생이 네게 무엇을 가르쳐주었냐는 거야

99세.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책의 주요 테마는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겪는 몸과 마음의 성장, 사랑과 이별, 새로운 발견, 가족, 책임, 우정, 노화 등의 삶의 단면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책 맨 뒤에는 저자가 만난 사람 몇몇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만났던 시리아 출신 여섯 아이 엄마의 이야기가 인상 깊네요. 그녀는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네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우며 우리는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한 말,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와 맞닿아있네요.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에 새로이 등장한 글귀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들부부에게 전해주고 싶네요.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사진 출처 - 헤럴드 경제

살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제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인생에 공짜는 없다"라 답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답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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