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낯섦

나는 아직 상실해본 적이 없구나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제시된 오늘의 글감은 마치 미션 같은 형태였습니다.

<오늘의 글감>
다음 문장으로 시작해보세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움이 바람처럼 밀려온다. 어제가 딱 그런날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움이 바람처럼 밀려온다.
어제가 딱 그런날이다.

이렇게 시작문장을 던지고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다음 생각으로 확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최근 거의 2주 내내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리 떠올려도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서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좋아하다'와 '사랑한다'가 가지는 무게감이 다른 것처럼

'보고 싶다'와 '그립다'는 이어지는 감정이면서도 그 깊이와 결이 다릅니다.


저의 경우,

'보고 싶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누군가에게는 인사치례로 자주 쓰지만

'그립다'는 말은 말로 뱉어본 적도, 글로 적어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리움'은 보편적인 감정이자 흔히 쓰는 단어이기에

언젠가 써봤을 수도 있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그 말을 썼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립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제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오롯이 공감할 만큼,

충분히 살아보지 않고, 충분히 잃어보지 않은 걸까요.


조금만 마음을 건드리는 영상이나 글을 읽어도

금세 눈물이 고이는 저이기에

감수성의 부족은 아닐 거에요.




그렇다면 저는 왜 '그리움'에 닿지 못했을까요.

어쩌면 제가 '그리움'의 정의를 너무 무겁게 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그리움은 어떤 대상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때, 그리고 영구적인 상실 혹은 되돌릴 수 없는 부재가 동반될 때 생기는 감정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가슴 저미는 만큼의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소중한 인연들에게 매번 최선을 다했기에

그리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되돌릴 수 없는 부재'를 외면하기 위해

'내가 원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언제든 다시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믿음을 품고 있는 것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무한히 많은 가능성은 사실상 0과 같은' 것처럼

'내가 원하면 볼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은

오히려 나의 소중한 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간과하게 하고,

관계에서의 노력을 미루게 하는 위험한 함정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해서,

"조금만 더 있다가 찾아가지 뭐",

"이 바쁜 거 끝나면 같이 여행가자" 며

하루이틀 미루다가는

훗날,

더 큰 그리움에 몸부림치게 될 수 있으니까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움이 바람처럼 밀려온다.
어제가 딱 그런날이다.

이 문장들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대신

오늘의 나에게 던진 이 질문들과

그리움에 대한 '낯섬'의 근원을 생각하던 나를

언젠가의 미래에서, 저는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리움'을 오롯이 공감하는 날을,

그리움의 전제인 '소중한 이의 부재'를 경험하는 날을, 기어코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별들을 겪게 되겠지요.


진짜 어른이 안 되어도 좋으니

'그리움의 깊이를 영원히 공감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소망을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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