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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Aug 06. 2015

제주 여행, 마음 빗장을 풀고

첫 번째 이야기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뭍에서의 점처럼 연속된 나의 하루들은 허탈하게 지나기만 한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왼쪽 눈꺼풀을 힘겹게 올리며 화장실로 걸어간다. 전쟁 같은 하루를 임하기 전에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일상의 의례이다. 눈 부신 LED 등 아래로 세면대에 떨어지는 물소리에 맞춰 칫솔질 소리가 의도치 않게 리듬을 탄다. 반복된 운동기억 덕분에 손과 발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출근 준비를 한다. 하지만 머리 속에는 '오늘 뭐 하지'따위는 없다. 그저 오늘 해야 할 회사 업무가 떠오른다. 이렇게 오늘이 지나갈 것이고 내일도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견딜 수 있다. 그것은 5월 첫날에 뭍을 떠나 섬을 향해 날아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긴 진창 같았던 지리멸렬한 날들이 있기에 제주행 비행기에 있는 지금이 황홀할 수 있지만.


여행을 가기 전, 여행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 기본적으로 먹거리, 볼거리, 안전한 쉼터(숙박), 이동 수단 등을 확인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여행지의 병원, 경찰서, 비상연락처 등을 알아두는 것은 분명 필요할 일이다. 하지만 여행 안내책자의 추천 코스만 고수하거나 여름방학  원형계획표처럼 시간을 재단한 여행 계획은 자칫 우리의 여행을 망칠 수 있다. 이런 여행 게획은 여행의 모든 것을 사전에 재단하거나, 우리가 예상치 못하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폄하하거나 아예 포기하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기꺼이 맞이하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강탈해 간다. 여행 책자를 따라 언제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정해진 순서대로 따르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그저 여행 그 자체를 위한 순례처럼 느껴진다.


비행기에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아이는 처음 보는 거대한 비행기에  압도당한 것 같다. 저 커다란 비행기가 자신을 삼켜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의 목에 매달려 자맥질을 치고 있다. 눈시울 벌겋게 농익은 채로 흘리는 눈물에 측은함을 느껴야 하지만 아빠의 능숙하지 못한 아이다룸에 웃음이 나왔다.



성수기 때문인지 제주 공항에 비행기가 10분 연착했다. 비행기가 활주로의 직선과 안전하게 맞닿아 착륙하자 안도감과 함께 곡기가 밀려왔다. 저렴한 가격에 두툼한 제주갈치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동문시장으로 가는 100번 버스를 탔다. 시장의 초입에 다다르니 입구가 제법 크다. 사람 많아 북적대고 다소 더럽겠지 하는 시장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생각은 보기 좋게 편견으로 절락했다.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땅바닥에 쓰레기 하나 보지 못했다. 시장 안을 몇 번 두리번 거리며 찾아다닌 끝에 올레 수산이라는 곳에 들어가 갈치조림을 하나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아줌마가 시간이 조금 걸린다기에 허기에 지친 내 몸에 못할 짓이다 싶어 좌판에 파는 모둠회 작은 접시를 만원 주고 샀다.


홍당무 게스트 하우스는 일주동로를 기준으로 조용한 평대리 서쪽에 있다. 그 집의 자리 앉음새가 전형적인 제주 집이다. 그런 전형에 약간의 차이는 제주에 흔한 빨간색, 파란색 지붕이 아닌 연노란색 지붕이다. 그래서 이 게스트 하우스는 마치 곱단한 세 처자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는 것 같다. 연노랑의 지붕은 윗저고리를, 하얀색을 투박하게 덧칠한 벽은 삼베 치마 같다. 그렇게 투박한 듯 곱단한 처자 세명이 서로를 마주 보면서 자리를 틀었으니 어찌 남정네의 눈이 가지 않을까? 남자가 묵기에는 여기는 너무 힘든 곳일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을 해봤다. 이날 남자는 나뿐이었다.



평대리 저녁 하늘이 수평선에 맞닿은 바다와 물들었다. 바다가 만월에 당겨져 올라온 건지 하늘이 만월에 밀려난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그저  만월만 혼자 열심히 빛나고 있었다.


결국 아니다 다를까 잠을 설쳤다. 밤과 아침의 모호한 경계 즈음까지 계속 뒤척이다가 결국 밖을 나와 버렸다. 뭍에서 훨씬 남쪽이라 밤은 따뜻할 줄 알았지만 너무 추웠다. 5분도 있지 못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제주 새벽의 매서운 기운 덕분에 긴장이 풀려 잠을 조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방음 따위 안중에 없는 시골 아침이라 동네의 부지런함 때문에 눈을 떴다. 옷을 따뜻하게 쟁여 입고 나왔더니 호스트의 부모님은 일찌감치 밭을 향해 나가는 모양이었다. 문득 어제 새벽에 못한 숙제가 생각나서 방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거닐었다. 게스트 하우스 뒤편에 무심하게 서 있는 나무가 보였다. 동쪽을 향해 마주오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카메라를 들어 나무를 찍었다. 땅 속에서 솟구쳐 올라온 목거인이 두 팔과 양 손가락을 있는 힘껏 펼치며 하늘을 떠받치려는 것 같았다.


이 집의 자유로운 영혼인 고양이. 딱 봐도 집고양이는 아닌  듯하다. 호스트와 기묘한 인연을 맺은 기묘한 동거인이다.


느닷없이 내 앞에 앉더니 아예 엎드린 고양이.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느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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