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의 따뜻한 위로"
홍대 앞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규모가 커서 사내 식당이 잘 갖춰져 있다 보니 외식을 할 일이 드물지만, 그때는 사정이 달랐다. 매일 점심마다 어디로 갈지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 바로 앞에 작은 간판 하나가 걸린 가게가 생겼다. 수프를 전문으로 하는 곳 같았다.
“이걸로 한 끼가 될까?” 싶었지만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들어간 그곳은 금세 우리의 단골 가게가 되었다.
사이좋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던 그 집의 대표 메뉴는 굴라쉬 수프였다. 배고픈 직장인과 학생을 위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수프와 함께 직접 구운 동그란 빵, 작은 샐러드, 밥 한 덩이를 세트로 내주었는데, 단출하면서도 알뜰했다. 특히 갓 구운 빵은 가게 안을 고소한 향으로 가득 채우곤 했다.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온몸이 든든해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장님 부부는 세계 일주를 다녀온 뒤 이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여행 중 만난 동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처음 맛본 굴라쉬 수프, 그때 차가운 거리 위에서 느낀 따끈한 위로가 얼마나 큰 울림이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 따뜻함을 한국에서도 전하고 싶었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는 수프 전문점이 참 많다. 특히 수프스톡 도쿄 같은 체인점은 웬만한 역 앞마다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점심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문화적 특징 때문인지, 수프만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는 개념이 아직 낯선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예전보다 가볍게 혼밥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언젠가는 죽집이 대중화되었던 것처럼, 수프 전문점도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한번 해볼까?’ 하며 작은 가게의 꿈을 또다시 꿔보게 된다.
사실 그때도, 지금도 나의 작은 꿈은 언젠가 이런 소박한 가게를 여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 부부의 모습이 늘 따뜻하고 부럽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동네를 떠났고, 아쉽게도 그 가게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겐 여전히 선명하다.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토마토 수프의 맛, 갓 구운 빵의 냄새, 소박한 인테리어, 그리고 부부의 환한 미소까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가끔 집에서 굴라쉬 수프를 끓인다. 원래의 레시피와는 조금 다르지만, 내 식대로 더 걸쭉하고 영양 가득하게 만든다. 한 숟갈 뜰 때마다, 그날의 따뜻한 풍경이 다시 눈앞에 번져온다.
재료
양파, 감자, 당근, 버섯 등 각종 채소
셀러리 (이게 포인트! 꼭 들어가야 해)
소고기 (부위 상관없음)
홀 토마토 통조림
맛술, 버터, 월계수 잎
오레가노, 파프리카 가루, 치킨스톡
파르메산 치즈
매콤한 맛 원하면 페퍼론치노 2-3알
만드는 법
압력밥솥에 손질한 채소와 소고기, 홀 토마토 통조림을 한꺼번에 넣는다.
맛술, 버터, 월계수 잎, 파프리카 가루, 오레가노, 치킨스톡, 파르메산 치즈를 넣고 20분 정도 가열한다.
간이 부족하면 파르메산 치즈를 조금 더 넣어 맞춘다.
완성된 수프 위에 버터 한 조각을 올려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