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나름 부지런히, 창의적으로, 나답게 잘 살고 있다던지, 이 정도면 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은은하게 자주 한다. 보통의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끔 내게는 너무 치명적인 사실에 부딪히게 되면 순식간에 자존감이 '0'에 수렴해버린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데 이토록 외부의존적인 것을 보면 내게는 애초에 자존감이라는 것이 없었고, 자존감 인척 하는 자존심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의 크립토나이트.. 나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빌런, 그것의 실체는 '내가 후진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 사람이 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후지고 나쁘고 촌스럽고 경박하고 어설픈 사람일 것이다. 사실 난 이미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사람을 적어도 오십 명은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때 어쩌다가 아파트 상가에 있던 분수대에 빠져 '엄마 엄마 엉어엉엉~!' 아기처럼 울던 나를 구경하던 동네 친구들은 '옛날에 우리 동네 분수대에 빠져서 바보처럼 엉엉 울던 애가 있었지. 자기가 장난치다가 빠져놓고선 그렇게 엉엉 울다니 진짜 바보 같았어.'라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반박할 기회도 없이, 나는 그들에겐 평생 바보처럼 울던 아이일 것이다.
중학교 땐 또래보다 조숙하고 진지했으므로, 그 나름대로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장기자랑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를 부르거나 춤을 출 때, 나는 머라이어 캐리의 'without you' 같은 낯간지럽고 진지한 노래를 불러댔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난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혼자 진지하던 애가 있었어'정도로 남았으려나.
고등학교 땐 쓸데없이 열정이 많았고 그것이 촌스러운 방식으로 튀었으므로 1학년 출발부터 난 이미 후진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렸고, 그것을 그 당시에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 나를 여러모로 괴롭게 했다. 당시에는 세련됐다 또는 쿨하다고 여겨지던 드레스코드가 있었는데 - 지오다노 면바지에 폴로셔츠, 닥터마틴 구두- 그때만 해도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던 나는 그 드레스 코드를 무참히 어기곤 했던 것이다. 아마도 2학년의 첫 소풍 때 그 촌스러움의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짧은 청치마에 커다란 챙모자, 화려한 패턴의 가방 같은 것을 입고 쓰고 든 내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이상한 아이라며 수군거렸던 것이다. 당시에 찍은 단체 사진 속의 나의 눈은 눈물로 퉁퉁 부어있다. 나의 쿨하지 못함을 크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봐도 참 이상한 차림새다. 그때의 나에 대해 수근거리던 아이들에게 나는 지금도 촌스러운 사람이겠지.
대학생 때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의 여파로 수업을 엉망으로 듣거나 완벽하게 잘하거나를 극단으로 오가면서 몇몇 교수님들이게 이해 못할 학생으로 찍히기도 했고 , 이런저런 알바를 하고 인턴을 하면서는 무능력하거나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도 철저히 내게 재미있는 일에만 몰두하고 부지런했으므로. 초보운전 시절엔 내가 잘못한 것인지도 모르고 나에게 욕설을 하거나 빵빵거리며 지나가는 모든 차에게 나도 똑같이 보복을 해주었으니 그때의 나를 본 누군가에겐 뻔뻔하고 운전 못하는 김여사 일 것이며,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잔뜩 예민해져 있던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한없이 까다롭게 굴었으니 난 골치 아픈 보호자로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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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나를 후진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오르면 내가 여태 쌓아온 자부심이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이 너무 쉽게 무너져버린다. 그럴 때의 나약한 내가 싫어서 나는 무너져버린 잔해 아래로 땅굴을 파서 잔해들을 숨겨버린다.
나는 제법 괜찮은 사람인데, 여전히 아웃사이더이고 쿨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고 있고 또.. 좋은 일도 간간히 하고 또.. 예의도 바르고 그래도 여러모로 좋은 사람인데...
혼자서 더듬더듬 해명을 해본들 소용이 없다. 되려 '괜찮은 사람인 나'와 '후진 사람인 나'의 사이의 괴리만 더 커질 뿐.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선물해주는 망각에 힘입어, 아주 먼 과거에 내가 저지른 후진 일들과는 그럭저럭 화해를 하고 살아간다. 문제는 현재에 내가 저지르는 후진 일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내가 후진 사람으로 평가받을 때이다.
그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너무 사소해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까칠한 고객이고, 예민한 아줌마이고, 일처리가 늦은 작가이며 무심한 학부모 일 것이다. 그나마 일회성이 아닌 만남에서 발생하는 오해는 해명할 기회가 주어지니 견딜만하다. 그러나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과 주고받는 오해나 불쾌한 부딪힘으로 그들에게 남겨진 나의 후진 인상은 여간해서는 해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나의 후진 모습이 박제된 불변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이 탄생한다.
"나는 혹시 정말로.. 후진 사람 인 걸까?'
그 조각들이 모인, 세상 후진 사람이 혹시 진정한 나 인 것일까?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해명해본들, 나의 괜찮은 조각들을 끌어모아 본들,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나?
실제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 그러나 괜찮지 않은 (심지어 타인에게 해악인 ) 사람을 종종 보지 않았던가.
이 질문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진정한 나-는 외부에서 오는 것인가 내부에서 오는 것인가- 이 대한 의문과도 맞닿아있다.
나는-다른 이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의 총체인가. 또는 오로지 나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 만이 진실인 것일까.
물론, 가장 바람직한 답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나를 잘 아는 이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 , 앞으로 발전하고 변해나갈 가능성의 나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mbti를 더하고 재미로 혈액형, 별자리, 성격 테스트 같은 것을 더해서 얼추 틀 비슷한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후진 사람이라는 사실에 마주칠 때마다 정말로 후진 사람이 되고 만다. 뭐 어쩌면 난 정말로 후진 구석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근사한 사람은 이토록 자신이 후짐에 타격을 받거다 신경 쓰지는 않을 테니. 나의 후짐에 대해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나의 후짐을 증명하는 것이렸다. 그나저나, 살면서 이렇게 '후지다'는 말을 많이 써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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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만 있다면, 나를 후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하고 싶다. 나를 못난 사춘기 소녀라고 기억하는 이에게, 예쁘고 화려하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심리랄까.(이것은 예 일뿐)
그들의 기억 속의 못난 나를 새로고침 해주고 싶다. 그렇게 못난 불변의 파편들을 하나둘씩 반듯한 조약돌로라도 업데이트하다 보면, 나의 자존감도 업데이트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이 지질한 고통은 결국 누구에게든 멋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절대 이루지 못할 독약 같은 욕심 탓인가 보다. 오은영 박사님에게 '자의식이 너무 커요. 그걸 타인 민감성이라고 하는데요---'로 이어지는 상담을 받고 싶다. 박사님이 '그렇게 남을 의식하다니.. 아이고 가여워라'라고 한마디 해주시면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타인의 동정 따위는 싫다면서 박사님의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싶은 이 마음도 후지다 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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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최근엔 나의 '내가 후진 사람일까 봐 걱정하는 나의 후진면'의 제법 괜찮은 면을 발견했다.
아이와 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열심히 시청했었다. 한번은, 의사와 간호사에게 까다로운 요구를 하고 깐깐하게 구는 보호자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다가 아이가 '어우 저 사람 왜 저래?!!'라며 화를 냈다. 아이가 보기에 그 보호자는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악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병원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우진이의 언니를 데리고 몇 달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시절이었다. 작은 아이의 팔에 바늘을 꽂아서 피를 뽑는 것도 괴로운데, 그걸 거의 매일 해야 했기에 어쩌다가 핏줄을 잘 못 잡는 새내기 간호사 선생님이나 인턴 선생님이 오면 그게 그렇게 싫었다. 아이의 건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던 나는, '제발 -혈관 잘 잡는 선생님으로 보내주세요!!'라며 신경질적으로 요구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왜 오늘은 이약을 안 주고 저 약을 주는지, 왜 이렇게 담당의가 안 오는지 하나하나 지독하게 까다롭게 굴던 보호자였다.
- 우진아. 나는 저 보호자 이해가 된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러는 게 당연한 거야.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냐.
- 그래도 너무 하잖아. 난 저런 사람 싫어
- 엄마 예전에 서윤 언니 병 때문에 병원에서 지냈잖아. 그때 엄마도 저랬어. 아니 엄마는 훨씬 더 심했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엉말? 몇 번이나 되물었다.
엄마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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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에 소아암 병동에서 소문난 까칠한 보호자였다. 당시에도 알고 있었고 지금 돌이켜봐도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싹수없는 진상 보호자였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아이를 지켜내고자 노력해준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크다. 다만,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통제하는 것 ,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감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뾰족했던 보호자 안신영도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 다른 뾰족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을 것이다. 아이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소아암 병동을 둘러보다가 담당의와 간호사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를 기억한다. 그제야 마음속에 꾹꾹 눌러왔던 감사와 미안함이 터져 나왔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어요 라고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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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 까다롭고 지질하고 예민하고 후지게 반응했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후진 안신영들이 가르쳐주었다. 오로지 후지기만 한 사람도, 오로지 멋지기만 한 사람도 없다. 오로지 악하기만 한 사람도, 오로지 선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사람은 다 고만고만하다는 사실로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동그랗고 무던한 성격이라면 부딪힐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적겠지. 하지만 모나고 각지고 울퉁불퉁한 성격이라서 좋은 점도 있다. 요란하게 굴러가면서 요란하게 많은 것을 배운다. 좀 더 내공이 쌓이면, 나보다 더 요란하거나, 덜 요란한 모든 울퉁불퉁한 사람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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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후진 사람으로 남는 것이 두렵다. 그 생각만으로 자존감이 무너지고, 못난 찌질이가 되고 만다. 나의 타인 민감성은 매일매일을 되도록 잘 살아내면서, 주어진 과제들을 잘 해내면서 성실하게 이겨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리라. 그런 매일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더 귀를 기울이고, 타인의 평가에 조금 무던해지고, 마음의 평화 같은 것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 평화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중심이 잡힌다면 참 좋겠다.
아직은 살날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믿으며) 그건 살짝 미래의 나에게 부채로 넘기고 우선 현재의 나는 ' 나에게 후진 면모를 보인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전체가 후진 것은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꽉 붙들려고 한다. 그리하여 매일 마주치는, 타인들의 지질한 파편들로 그들을 평가하지 말아야지. 그것은 정말로 아주 작은 파편일 뿐, 그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으며 누군가의 사랑과 평화이며, 웃음과 고통과 연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나의 후진 파편들이 나의 전부를 정의 내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타인에게 반사해본다.
(그리고 내 마음속 '후진 사람'의 폴더에 저장된 모든 사람들아.. 이제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거라-)
이 생각을 하는 나는 제법 괜찮은 것 같아서, 자존감이 아주 쪼금 올라가고, 타인 민감성이 아주 조금 낮아진 것 같아요 오은영 박사님- 조용히 혼잣말을 하면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