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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운동을 시작합니다.

by 세아


어릴 적 내가 살던 서대문구 우리 동네엔 '홍제천'이 있다.


나의 오랜 기억 속 첫 홍제천의 모습은 하수구 냄새가 풀풀 나고 잡초들이 무성한 고가도로 밑 개천이었다.


그러다 점점 꽃도 많이 심고 잡초도 정리하기 시작하였고 유명화가의 그림도 다리마다 걸어두며 길도 운동하게 편하게 공사를 하여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나도 공부하다 머리 식힐 겸 자주 개천을 찾았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는 하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는 것이 익숙해졌고 노래 들으며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헬스장 갈 돈이 없을 때도 개천을 걸었고 교통사고 후 재활목적으로 운동삼아 걸어서 한강까지 다녀오고는 하였다.


운전면허증은 땄지만 워낙 겁이 많아 운전대만 잡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 남편 없이 외출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네이버지도로 걸어서 갈 수 있나 확인 후 걸어가고는 하였다.


그리고 요새는 매일 '만보 걷기'를 목표로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일을 그만두고 쉬게 된 지 3개월이 지나가자 몸매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먹고 자고 운동을 안 해도 1-2kg 정도 왔다 갔다 할 뿐 평균 몸무게를 유지했는데 계속 쉬기만 하니 체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1킬로 쪘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2킬로가 찌니 '아 이제 빼야겠다' 싶었고 3킬로가 넘어가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아이들 책, 내 책 빌리러 도서관까지 걸어 다니고 먹는 것도 나름 줄인다 하였는데도 큰아이 학원 끝나고 늦은 저녁을 몰아서 먹어 그런지 점점 체중이 늘어갔다.


굶거나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은 나와는 맞지 않았고 결국 식사양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아이 낳고 해 봤던 필라테스를 다시 해보고 싶었지만 집에서 놀면서 돈까지 쓰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 중 스쿼트 자세를 따라 해 보았다.

내가 본 영상에선 팔을 가슴 앞쪽으로 크로스한 후 스쿼트 자세로 앉았다 일어나며 몸통을 좌우로 회전하는 것이었는데 100번을 해야 했다.


처음이면 개수를 줄여서 했어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욕심을 내어 100번을 채웠더니 다음날부터 근육통이 심하게 와 일주일을 걸어 다닐 때 고생 하였다.

그렇게 며칠을 더 하다가 힘만들 재미도 없어 포기하였는데 살이 잔뜩 찌고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에이 그냥 걷자. 내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건 걷는 거니깐'


날도 풀렸겠다 마음먹고 집 근처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호수공원을 반 바퀴 걷다 돌아오니 6천 걸음밖에 안 되었다.

둘째 날 한 바퀴를 다 돌고 오니 그제야 만보가 넘었다.


만보를 채우기 위해 앞으로 나의 목표는 매일 호수공원 한 바퀴 돌고 오기다.


걸으며 꽃봉오리가 점점 펴가는 걸 보는 즐거움도 느끼고 운동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걷다 보면 걱정거리던 것들도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고 긍정적인 기운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좋다.


그래서 걷는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욕심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꾸준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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