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35일차 - 갑자기 퇴원이라뇨?
오늘은 임신을 한지 34주 4일차다. 입원을 한지는 35일차고 나는 현재 퇴원 수속을 위해 마지막 링겔을 떼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저께까지 수술을 대비하여 금식을 하고, 수술용 바늘을 꼽고, 아랫동네 제모까지 마쳤는데... 드라마급 반전으로 퇴원이라니!
고위험산모 집중치료실에서 있었던 2주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내가 가장 오래 있는 본의 아닌 “왕고”가 되었고, 옆자리, 앞자리 산모분들 다 퇴원을 하고 싶다고 우시다 조금 호전이 되어 퇴원을 했다가 이틀 뒤에 다시 똑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목격을 했다.
그 사이 양수가 새서 응급제왕을 한 산모분, 임신중독증으로 급하게 위험한 산모분, 초중기 유산을 한 산모분등 여러 산모분들의 안부를 커튼 너머로 들으며 한 생명을 품고 엄마가 되는 것은 정말 숭고하고 대단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와중 남편이 다쳤던 다리를 또 다쳐 수술을 하게 되어 약간 멘붕이었으나, 친척분의 도움으로 무릎을 잘 봐주시는 정말 좋은 교수님을 소개 받아 적기에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병원으로 옮긴 후 나의 엄마는 고이고이 도시락을 싸서 두시간 거리를 두번이나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오셨다. 어릴적부터 도시락을 싸주실 때 엄마는 꼭 형형색색의 보자기에 싸주시는데 엄마의 곱고 예쁘게 매듭지어진 마음을 푸를 때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입원기간 내내 가족들의 도움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응원해주고 안부를 물어주고 연락주는 마음들 덕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자잘한 근육들이 많이 붙었고, 이번 일 덕에 나도 주변 다른 사람이 큰 일을 겪을 때, 어떻게 하는게 맞는지 배운 시기였다. 받은게 너무 많다.. 어떻게 살면서 다 갚아나가지?
여하간 트랙토실을 끊고 얼마 안되어 진진통이 시작되어 제왕절개를 해야할 수도 있단 예상, 그리고 그에 맞춰 수술을 준비했던 것과 달리 나는 드라마급의 반전으로 퇴원을 할 수 있단 이야기를 어제 들었다.
나는 꿈이 잘 맞는 편이라 입원 기간 내내 신변에 변화가 생기기 전날 꿈을 꾸었는데, 이 퇴원 가능 통보 역시 어린이날 잠깐 청한 낮잠 후에 듣게 되었다. 꿈에서 돌아가신 양가 할아버지들이 찾아오셔서 나를 보고 웃으시고 외할아버지가 ”나라가 참 착해“ 라고 하시는 것을 듣고 깨고 얼마 안되어 회진차 방문하신 교수님으로부터 퇴원이 가능하단 소식을 듣게 되어 이게 돌아가신 할아버지 덕인 것 같아, 그리고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싶어서 (뒤에 할머니들도 계셨다) 숨죽여 엉엉 울었다. 심지어 그날은 공휴일이라 교수님이 안오신다고 들었었는데 말이지..
오늘자 나의 자궁 경부 길이는 1.3cm이고 오전에 침대가 젖어있어 양수가 샜네마네 하며 양수검사를 했지만 다행히도 음성으로 나왔다. 병원비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더 적게 나와서 다행이다. 이제 분만 전까지 퇴원 후 집에서도 조심조심 누워만 있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남편이랑 누워서 같은 영화를 볼 수 있고 수박도 먹을 수 있다.
우리 아기는 굉장한 복덩이가 될 것 같다. 따뜻함과 이타심, 지혜와 온유함을 근간으로 건강하게 자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