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자기효능감, 자기 암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사건과 감정 사이에 끼어 있는 신념이다. _오늘부터 불행을 단호히 거부하기로 했다(앨버트 엘리스)
부모로서 기분이 좋은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 중 하나는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공부하다가 "난 역시 천재야!”라고 혼잣말하는 걸 들었을 때였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외친 순간을 긍정적 신호로 봤습니다. 이런 말은 자신감, 자존감, 자기 효능감 등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나오는 표현입니다. 부모로서도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아들이 '나는 역시 천재야'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성취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런 경험에는 운도 작용합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퇴근하는 길에 가끔 스도쿠라는 게임집을 사 왔습니다.
스도쿠 게임은 9x9 매트릭스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겹치지 않게 채우는 게임입니다. 숫자에 밝은 아들이 흥미를 보였습니다. 성인들이 푸는 수준의 스도쿠를 누가 빨리 푸나 아들과 놀이처럼 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넓은 스도쿠 용지를 가져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초등학교 2학년 수준에 맞는 아주 기초적인 스도쿠를 학생들에게 풀도록 했습니다.
스도쿠를 미리 경험한 아들은 같은 반 아이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습니다. 선생님은 따로 스도쿠 용지를 준비해서 아들에게 내줬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친구들보다 뛰어나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듯합니다. 자신감은 ‘무엇이건 잘할 수 있다'라는 자기 확신으로 학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원더풀 건(建)", "스마트 수(秀)" 제가 쌍둥이를 부를 때 대학생인 지금도 쓰는 호칭입니다. 쌍둥이가 영어 유치원에서 받아온 평가 문구를 인용해서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쌍둥이는 이 호칭에 맞는 성향으로 자랐습니다.
아들은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에서 소질을 보였습니다. 딸은 공부와 그림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이나 게임 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공기놀이를 하더라도 반에서 제일 잘할 정도로 강한 집중력과 승부욕을 발휘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교내 토론대회에서 준우승하고, 학원 강사가 보여주는 카드 마술에 매료되어 스스로 익힌 카드 마술이 수준급입니다. 아들은 여러 가지를 파고들면서 무엇이건 '원더풀' 하게 해냈습니다.
딸은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전교 5위 안에 드는 성적으로 학교를 대표해서 장학 퀴즈 TV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대학생인 지금은 영어, 독일어, 불어는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수준으로 어학이 강점입니다.
기대가 반영된 호칭대로 아들은 원더풀하고, 딸은 스마트하게 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부모의 기대를 담은 호칭은 암시가 되고, 암시는 아이의 잠재의식에서 부화해서 현실이 됩니다.
잠시 복싱 체육관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복싱 체육관은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다지기 위해 나와서 운동하는 곳입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조그만 체구의 아이가 젊은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아이는 약간 비만하고 자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고 다이어트도 시킬 겸 해서 복싱 체육관에 온 듯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복싱을 재밌어했고 꾸준히 나왔습니다.
어느 날 아이 엄마가 복싱 체육관 코치에게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애기 같아서 걱정이에요.”
엄마는 아이의 그런 모습에 속이 많이 상한 듯했습니다. 그리고 줄넘기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를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애기야, 이리 와.”
엄마는 초등학생을 ‘애기야'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기대에 맞게 무의식적으로 ‘애기처럼' 말하고 행동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무심코 부르는 호칭은 '암시'가 되고 무의식에 새겨집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_생각의 좌표(홍세화)
자기 암시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여러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로젠탈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 충족적 예언 등이 그런 용어에 해당합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런 긍정적 자기 암시 효과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부모입니다. 부모가 얼마나 아이를 믿어 주고 기대심을 효과적으로 심어주느냐에 따라 아이는 달라집니다. 다만, 부모의 기대나 요구가 강요로 느껴질 때 아이는 저항하거나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해!", "너희는 이런 계획에 따라 이런 진로를 선택했으면 한다"든지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관심이나 무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자신의 삶을 자신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발적으로 학습하고 탐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부모가 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아이를 끌어당기고,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이끌리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면서 자기화할 뿐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보고 느낀 것은 한 인간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정체성이 됩니다. 부모가 항상 언행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