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무서워하시는 회원님의 경우 물에 뜨려고 하다가 발버둥을 칠 수 있어요. 제가 발버둥을 쳐볼 테니 한번 손목을 붙잡고 지지해 봐요. 그렇게 휘청대지 말고, 더 자신 있게! 힘을 줘서! 단단히 붙들고! 목소리는 크게!”
수영 강사로 일하기 위해 지도법을 배우면서 깨닫게 된 것은, 생각보다 사람을 물에서 지지하는 일은 험난하다는 것이다. 발이 닿지 않는 물에 들어가면—특히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은—누구나가 일단 숨을 쉬고 싶어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휘젓고 뭐라도 붙들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붙잡히면,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기 때문에, 그 악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러니만큼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취득할 때 계속 배우는 것이, 익수자에게 2미터 이상 접근하지 말 것, 이라는 원칙이다. 구조한답시고 다가가다가 구조자가 익수자에게 잡혀 버리면 속수무책으로 함께 물에 빠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익수자를 구조할 때는 익수자가 물에 빠진 지점으로부터 2미터 앞에서 잠수하여 익수자의 다리 아래를 통과해 익수자의 등 뒤에서 그를 붙잡고 물 밖으로 구조하는 수하접근(水下接近)이라든지, 레스큐 튜브(구조에 사용하는 기다란 튜브를 말한다)를 뻗어서 익수자에게 내미는 뻗어돕기 등의 구조법으로, 최대한 2미터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그에게 접근해야 한다. 이렇듯 물에 빠진 탓에 공포에 질려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는 사람을 붙들고 안심시키는 일부터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수영 강사라는 직업은 잠재적 익수자에게 혼자서 물에서 살아나오는 법을 차근히 안전하게 알려 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킥판을 잡고 자유형 발차기를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 해도 발목을 잡아서 위아래로 다리를 움직여 줘야 하는데, 성인이 발을 차는 힘을 견디면서 옳은 방향으로 발을 차라고 힘으로 지도해 주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힘이 필요한 일인 걸 몰랐다며 걱정하자, 알려주시는 선생님께서 원래 초급반을 1시간 지도하고 나면 어깨까지 뻐근한 법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렇게 지도법 수업이 끝나고, 내가 맡게 될 저녁 타임 수업 참관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영하로 떨어져 추운 날씨와 깜깜한 길 탓이었는지, 생각보다 힘을 써야 한다는 깨달음 탓이었는지, 아, 내가 이걸 물로 봤구나……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전화하면—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생각해 봤는데 제가 수영 강사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나약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
……지만, 한 번 하겠다고 한 말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각오로 자신을 다잡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새롭게 먹었다. 수영을 가르치는 일도 몸에 익으면 조금 수월해질 것이다, 처음이니까 힘든 게 당연하다, 지금은 그릿(grit)해야 할 때다, 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통번역대학원을 다닐 때 번역을 가르치시는 교수님께서는 “번역은 엉덩이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어 실력과 한국어 실력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그게 갖춰진 상태에서는 번역은 누가 더 끈기 있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싸움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몇 시간을 씨름할 수 있는 사람,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샤워를 하다가도 중얼중얼, 이게 맞나, 더 좋은 표현은 없나, 하다가,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머릿속으로 이게 정말 최선인가, 생각하다가 잠에 들었다가, 꿈속에서라도 이거다! 하고 떠오르면 바로 눈을 번쩍 뜨고 옆에 놔둔 메모장에 지금 생각난 그 단어를 놓칠세라 급하게 적어두고 다시금, 이번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사람(그런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잘 때는 항상 메모할 수 있도록 핸드폰을 바로 옆에 두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 번역가가 되기에 적합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번역은 한 번에 되는 일이 없고, 하나의 표현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만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만큼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잘하는 사람이 오래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라고.
그런 맥락에서 어떤 베스트셀러에 “그릿(grit)”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는, 그야말로 이런 특성을 정확히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릿—하고 발음을 해 보면 저절로 이가 악물어지게 되는데, 그 의미인즉슨 그 발음 그대로 힘든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근성을 뜻한다. 물론 잘못된 상황에서도 버티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너무 힘들거나 부당한 상황에서는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분리해 버리고 뛰쳐나오는 용기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걸 버티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해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조금만 더 버텨 보자는 취지이다.
수영에서도 “하이폭식(hypoxic) 훈련”이라는 개념이 있다. 바로 호흡을 의도적으로 참아 가면서 심폐기능을 높이는 것인데, 원래는 2번 팔을 저으면 1번씩 호흡했다면 이제는 3번 팔을 저으면 1번 호흡, 그 다음엔 5번 팔을 저으면 1번 호흡, 그 다음엔 7번 팔을 저으면 1번 호흡을 하는 식으로 호흡을 점점 줄여나가는 훈련이다. 그러다 보면 산소가 부족해서 팔다리가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지만(물론 너무 무리하면 위험하니, 개인적으로는 안전을 위해서 꼭 수영 강사나 라이프가드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만 시도하면 좋겠다), 심폐지구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훈련으로 꼽힌다. 50미터 자유형을 할 때 3, 5, 7 호흡을 모두 지켜서 완주하면 숨은 가쁘지만 뭔가 아주 뿌듯한 것을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자아효능감이 올라가고, 그렇게 한 발짝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그릿-훈련법인 것이다.
갑각류의 동물들은 속살이 워낙 여리므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겉에 딱딱한 껍질을 두른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속살이 점점 성장하여, 더 큰 껍질이 필요해진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비좁아진 껍질을 버리고, 성장한 여린 속살에 맞는 더 큰 껍질을 만들어 다시 두른다고 한다. 그러나 작은 껍질을 버리는 일이 즐거울 리가 없다. 갑각류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긴 몰라도, 껍질에서 빠져나올 때 여린 살이 쓸려 아프기도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 비좁아진 껍질로는 이미 성장한 나를 담을 수가 없으니, 과거의 껍질에서 나오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 껍질을 내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다시 만드는 과정 역시, 성장을 위해 기필코 필요한 일이다. 그에 수반되는 성장통을 겪을 때, 포기할까 말까 기로에 서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