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를 읽고
사 년 전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고 오는 날, 갑작스레 라식 시술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벼르긴 했지만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다. 이미 사십이 넘은 나이에 노안이 진행된 상태여서 결과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시 시술 후 몇 번의 검사 후에도 기대치만큼 시력은 나오지 않았다. 노안을 대비한다고 시력 차를 두고 교정을 한 탓에 오히려 양쪽 눈이 다 흐릿하게 보였다. 그래도 몇 십 년 만에 안경을 벗었다는 것만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겨울에도 김 서릴 걱정하지 않고 여름에도 선그라스를 마음대로 골라 쓸 수 있었다. 신체의 불편함을 벗어나 일말의 자유를 느꼈다. 나를 옭죄던 구속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년 지나자 눈은 예상대로 급격히 다시 침침해 졌고 최근에 어쩔 수 없이 다초점 안경을 끼게 됐다.
몇 년 전 영화 ‘여인의 향기’를 봤다. 그때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보이지 않는데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시력을 잃은 주인공은 낯선 여인과 탱고를 춘다. 볼 수도 없는데 하물며 걷는 것도 아닌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남자는 보행을 도와주던 청년에게서 무대의 사방 넓이와 계단의 위치 등 중요한 공간의 특징을 들은 후 그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그러고는 도움 없이 무대 위에 올라선다. 그 순간 어떤 생각 이었을지 어떤 마음 이었을지 알 수 없었다. 용기인지 만용인지 믿음인지 절망인지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오로지 청년의 말을 듣고 무대를 상상하며 자신의 온몸을 내민다. 놀라웠던 건 그 믿음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 보이지 않는 길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전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은 어떨까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라식 시술을 받고 다시 안경을 끼게 되면서 본다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피부에 와 닿았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지 현실 속에서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인간은 생로병사를 겪는다. 늙으면서 신체기능은 쇠퇴하고 일정부분 정상 작동되지 않는다. 노화를 겪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예비 된 장애인이다. 삶 속에서도 장애가 될 가능성은 늘 잠재되어 있다. 특별한 사람만 특별한 경우에만 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 언제라도 장애자가 될 가능성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현대 사회 우리 모두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바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도와야할 이유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판에 박힌 말이 나의 삶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얼마 전 직장에서 참여한 워크숍에서 눈 가리고 걷는 게임이 있었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짝이 정해졌고 정해진 순간 우리는 한 배를 탄 거였다. 코스는 공원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진행자가 요구하는 대로 걷는 방식이었다. 계단이나 높이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경우도 있고 장애물도 있었다. 눈을 뜨고 걸을 때는 안전하게 걸어 갈 수 있는 평이한 코스였다.
내 차례가 됐다. 다른 팀들이 걷는 모습을 볼 때는 엉거주춤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막상 내 가 안대를 끼고 보니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 까만 공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내 옆 동료를 믿고 이 검은 우주 속 공간을 걸어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발을 떼는 일이 태초의 세상에 첫발을 딛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검은 공간에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막막한 광대한 우주에 나만의 길을 내며 걸어 나간다는 일이 천지창조만큼이나 위대하게 느껴졌다. 마치 발을 디디면 허공에 끝 모를 낭떠러지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다. 한발 한발 돌다리 두드리듯 발끝으로 더듬으며 한발씩 디뎠다. 몇 걸음 가다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바닥은 평평하니까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삶에도 그렇듯 모든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곧 바닥의 높이가 다른 곳이 나왔고 나는 다시 두려워졌다. 발을 높이 들어서 언덕처럼 비탈진 곳을 올랐다. 높이가 달라지니 공간감각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동료 팔을 붙잡고 끌려가듯 더듬더듬 언덕을 올랐다. 얼굴로 달려드는 나뭇가지를 피해 고개를 숙이며 걸었다. 다시 운동장 잔디밭 같은 평지가 나왔고 조금 지나니 계단이 나왔다. 한 계단씩 내려가니 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다 내려왔다고 동료가 말했지만 계속 내리막길이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평지를 얼마간 걸은 후 목적지에 다다랐다.
눈 가리고 걷는 체험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짝이 된 순간 동료와 나는 같은 운명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자 우주 공간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시작도 끝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하지만 그 속에 나는 서 있고 내 옆에는 동료가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존재한다. 모두 각자 길을 내며 저마다의 방향으로 걸어가고 부딪치기도 한다. 길이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를 찾아간다. 동료와 걷는 과정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건 믿음이었다.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었던 건 내 옆의 동료를 믿었기 때문이다. 믿지 못했다면 난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사 년 전 국민을 집단 우울증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자신만을 위해 도망친 선장과 선언이 있었고 유가족 앞에서 죽음을 조롱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시력이나 청력보다 더 심각한 건 공감능력의 상실이다.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삶에서 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현대 우리 사회 개인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회는 물론 국가 또한 믿지 못한다. 이런 총체적 불신이 공감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느낄 줄 모르게 됐다. 결국 공감할 수 없는 마음의 장애자들이 돼버렸다.
「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책을 읽었다. 저자는 세월호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도운 사람은 아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꼈던 공감능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감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망상이나 집단이기주의를 넘어선다고 강조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잠재적 장애인들이 예비 된 장애를 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타인에 대한 공감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고립된 섬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도 사회의 관계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예비 된 장애인인 나도 불편하지 않게 살아가길 원한다. 나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은 필수다. 서로 도울 때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과 불편을 실감할 때만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공감능력이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눈감고 추는 탱고 같다. 같이 걷는 동료를 믿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잘 보이지 않는 길에서 희망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