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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Feb 03. 2018

[인도 라다크 여행 1]
같이 가는 것을 두려워 말자

인도여행/인도 레 여행기

레의 메인 바자르로 가는 길.

겨울이 오면 레는 숨을 죽인다.
해발 3,500미터가 넘는 높이에 있는 마을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추위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한 도로들은 꽁꽁 얼어붙어 막혀버리고, 수많은 상점들과 식당, 숙박업소들은 아예 문을 닫아버린다. 원래도 살기 어려운 도시인데다가,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간 10월 중순은, 본격적으로 비성수기가 시작되는 때였다. 이미 우리가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으며, 그나마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면, 내일이면 가게를 닫고 내려간다고 말하며 물건들을 싸게 팔겠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원활한 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바로 지금, 10월이었다.

원래는 여행자들이 꽉 채워야 할 거리, 창 스파

추석 연휴만큼은 가족들과 꼭 같이 보내자는 게 내 신조이니만큼, 나와 여름이의 여행은 10월부터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레를 먼저 가게 되었다. 나는 큰 걱정 없이 아무리 비성수기라도 뭐, 비행기는 날고, 사람들도 살고 하는데 무슨 일 있겠어? 싶었지만 여름이는 오기 전부터 무척 걱정이 많았다. 여행자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누브라밸리와 판공초 여행이 불가능해지진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려면 차를 빌려야 하는데, 둘이서만 빌리기에는 가격대가 좀 높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허가증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군사지역이니만큼 안전 또한 보장받기 어려웠다.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한참이나 동행을 구했고, 여행지로 떠나기 나흘 전쯤에 이미 네 명의 팀원이 갖춰진 팀과 함께하게 되었다.

입 앙 다문 것 좀 보소.

그동안 나는 혼자서만 여행했었다. 여행에 동반자가 생긴다고 해도 대부분 일일 투어에 가서 만나 하루쯤 함께 다니며 말동무를 하는 정도? 그 외엔 어디 밥을 먹으러 가거나 카페에 갔다가 한국인인 사람을 만나 질문과 답변을 몇 번 주고받은 것 말고는 대화라는 걸 할 기회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좋았다. 해외여행 초반에는 동행을 구해서 여행한다는 것 자체를 잘 몰랐고, 알고 난 다음에도 굳이 동행을 구한 적이 없다. 남을 신경쓰고 싶지 않았고, 내 여행이 남에게 영향받는 게 싫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무서웠다.


만약에 인도, 그 중에서도 레가 아니었더라면 동행을 구했을까? 분명 아니었을 거다. 혼자만으로 충분한 여행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는데다가 두 명이니 걱정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동행들은 최고였다. 멤버 여섯의 성별과 성격, 나이, 살아온 환경이 전부 다 달랐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마을 구멍가게에서 형님이 사준 사탕.




초점이 날아간 사진이지만, 그분의 열정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우선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태현형님. 오빠라고 부르기가 낯간지러워서 그냥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말을 놓기까지 해 버렸다, 델리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차분하고 침착한 말투에 나까지 경건(?)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형님은 여행 내내 미묘한 중심추 같은 존재였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방향을 바라보는 우리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형님을 중심으로 모여있곤 했다. 나중에 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는데, 전 직장에서 팀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업무를 했다고 하길래 과연,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최근에 알게 된 사람 중 가장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무척 기뻤다.

나랑 닮은 친구...

그 다음은 두번째로 나이가 많았던 나. 나는... 뭘 했는지 모르겠다. 워낙 가이드 경험이 오래된 탓인지 많은 인원들 앞에서는 정신줄을 놓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혼자가 되면 조용해지고. 주로 식당에 가면 메뉴를 추천하는 역할이나 긴 팔을 이용한 셀카봉 대체제로 활약했던 듯.

태현형님 방인데 너무 전망이 좋다며 넋을 놓은 윤여름.

그 다음은 윤여름. 함께 올 정도로 믿음이 갔던 사람이니 굳이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래도 허전하니 같이 말해보자면, 이 친구는 하고 싶은 게 언제나 명확한 친구다.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보면 주변 사람들도 따라서 하게 되는 파워가 있다. 그 열기로 여행을 활기차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가장 큰 낙타를 골라타서 가장 편안해하던 상현이.

이미 한 달 정도의 여행을 하고 왔다는 상현이는 이 여행의 대장이었는데, 약간의 허당 기질이 있으면서도 대장 역할 때문에 숙소를 알아보거나 계산을 할 때 언제나 열심이어서 고마웠다. 그 와중에 재밌었던 건, 문득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였다. 회사 생활을 처음 했을 때, 어색한 상황에서 대답은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했고 그래서 감정표현이 어색했던 적이 많았다. 영혼이 없어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상현이도 그랬다. 가끔 영혼 없이 빠르게 반응할 때가 있어 모두 웃곤 했다. 나도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의 내가 떠올라서 괜히 아련한 기분이 들곤 했다.

멍멍이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그리고 종욱이. 종욱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곤 하는 부산 남자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말수가 많지 않고 약간 딱딱한 표정을 가진. 물론 모든 부산 남자가 그럴 리 없고, 부산남자만 그럴 리도 없지만 알고 보니 역시 좋은 애였다. 일단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주는 거. 무거운 짐 드는 사람 있으면 꼭 가서 도와주고, 뭐 챙겨야 할 거 있으면 챙겨주고, 누가 밥 먹다가 흘리면 제일 먼저 티슈 뽑아주고. 종욱이와는 라다크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네팔 포카라까지 함께했다.

아쉽게도 모자를 쓴 사진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길게 파마한 머리와 모자가 참 잘 어울렸던 다운이. 가장 어린 나이면서도 인도는 두 번째인 경험자였다. 원래는 남인도만 갈 생각으로 샌달 하나만 달랑 신고 왔는데 어쩌다 인도에서 가장 추운 레 끝자락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추위를 많이 탄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언제나 조용조용히 여정에 함께 해주었고, 별 쓰잘데기없는 소리를 하면서 낄낄거리는 우리를 잘 참아주었다.

계란, 오이, 당근으로 만들어진 아침. 나는 먹기만 했다. 고맙게도.

까탈스러워도 까탈스러움을 티 내는 사람이 없었고, 힘들어도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 성격과 취향이 이만큼이나 다른데도 어떻게 이렇게 함께 지낼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모두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서 했는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아무것도 안 하고 논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만약 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3박 4일의 여행이 이만큼이나 재밌었을까? 전혀 확신할 수 없다.

드디어, 판공초.

사실 동행을 구할 때의 첫 마음은 '둘이 가면 비싸고 위험하니까 여럿이 가면 낫겠지.' 정도였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같이 꾸역꾸역 한국 노래를 담아 듣고, 춥고 괴로울 때마다 서로 챙겨주고, 산소도 부족한 동네에서 억지로 억지로 캠프파이어를 해 가며 지낸 3박 4일동안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다 기억에 남았다.

다 같이 돌자, 마을 한바퀴.

혼자 갈 수 없다면 둘이 가고, 둘이 갈 수 없다면 셋, 넷, 다섯... 여럿이서 가면 된다. 그동안은 혼자서만 여행하며 이 재미를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혼자 할 수 없다면 도움을 구해도 좋다는 것, 도움을 구했을 때 내게로 뻗어오는 손을 잡는 용기 또한 한 번쯤 내봐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겁낼 것 없다. 예상보다는 쉬우며, 생각보다는 중요한 일이니까.




물론, 좋은 동행을 구하게 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동행의 즐거움을 한껏 느끼며 글을 쓰기 시작해서, 동헹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 채로 또 글을 끝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에는 레였지만, 마무리하는 지금은 포카라에 혼자다. 나와 종욱, 여름이 셋이 ABC 베이스캠프에 오르기로 하고 포카라로 건너왔다. 셋이 함께하는 여행 내내 종욱이와 여름이의 케미가 너무 잘 맞길래 차라리 혼자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둘은 일정대로 먼저 올라갔고, 나는 내일 혼자서 트레킹을 시작할 예정이다. 포터를 다시 구하고 소중한 2천루피를 날려가며 팀스를 새로 받아야 했지만, 어제부터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동행의 명과 암을 몸소 체험한 기분이지만, 만약 이 모든 것을 알고 나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이 멤버들과 또 누브라밸리-판공초 여행을 하고 싶다. 그만큼이나 즐거웠으니까.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던 누브라밸리-판공초 3박 4일 여행기,

첫 화부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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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같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2화.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아무도

3화. 거대한 바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4화.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멀리 간다

5화. 기회를 영원으로 만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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