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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Feb 20. 2018

[인도 라다크 여행 3]
거대한 바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인도여행/인도 레 여행기

사람이 할 수 있는 실수는 무척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는 눈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일어나곤 한다. 여기서의 눈 앞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해도 무관하다. 첫째, 실제 시야. 둘째, 미래. 둘 중 무엇이 되었든간에,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아주 작은 것도 내 두 눈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적을 실컷 울려가며 꼬불꼬불 커브를 도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이 되었든 누구나 긴장을 풀 때가 있다. 3박 4일의 거친 여행 중, 우리의 운전사 지미도 몇 번 경적을 울리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번, 정말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

지미의 유에스비 안에는 라다크 음악이 들어있었다. 어떤 노래는 모르고 들어도 흥겨웠지만, 대부분의 라다키 송은 뜻 모를 가사와 생경한 리듬 때문에 무척 어색했다. 우리는 결국 한국 음악을 듣기로 하고, 유에스비에다 한국 음악을 담아 꽂았다. 여러 익숙한 노래를 지나,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처럼,
마지막처럼,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길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지나다니는 차가 없어 한산했다. 노래도 흥겹고 도로도 여유롭고,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았다. 아마 지미도 그랬을 것 같다. 순조롭게 달리다가 야트막한 바위가 있는 커브를 도는데, 갑자기 자동차 앞유리를 다른 자동차의 앞모습이 꽉 채웠다. 지미는 처음으로 급정거를 했다. 길 왼쪽은 낭떠러지였다. 그대로 부딪혀도, 간신히 피해도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우리 모두 놀라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마지막처럼’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흘러나왔다. 다행히 두 차 모두 급정거를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 잠깐의 침묵 후, 천천히 차를 돌려 안전해진 후에야 우리는 정말 노래 가사를 따라 ‘마지막처럼’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며 안도의 웃음을 터트렸다. 웃으면서 진짜 위험하구나, 우리 위험했구나, 저 차 너무 위험하다, 경적을 역시 울려야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큰 차가 작은 바위 뒤에서 나왔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다를까, 우리의 차는 내리막을 달리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 차는 오르막길을 올라온 거고, 상대적으로 위쪽에 있던 우리의 시야는 크지 않은 작은 바위에도 가려져 버린 거다. 

손바닥으로 달을 가린다는 말이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던 아주 어린 시절에는 손바닥으로 달을 어떻게 가릴 수 있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실제로 손바닥을 눈 앞에 두고 나서 깨달았다. 달은 분명 저 위에 그대로 있다. 그러나 달에 가져다놓으면 아주 작은 티끌로도 보이지 않을 이 작은 손바닥을 눈 앞에 두면, 달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가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과연 손바닥 뿐일까. 아주 작은 바위로도 거대한 트럭을 가려버릴 수 있고, 아주 작은 욕심으로도 뒤에 따라올 커다란 재앙을 안 보이게 만들 수 있다. 하필 인간에게는 눈이 있고, 이 눈은 보이는 것을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당장 직면한 게 아니고서야 그 뒤에 뭐가 있는지 영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눈이라는 이 위험한 것을 달고 있는 한은 맞닥뜨린 것에만 정신을 팔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속도를 조금 늦출 수도 있고, 경적을 울릴 수도 있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작은 것만 믿기보다는 그 뒤까지 볼 수 있어야 안전한 법이라고, 작게나마 또 하나 배운 순간이었다.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던 누브라밸리-판공초 3박 4일 여행기,

첫 화부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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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같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2화.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아무도

3화. 거대한 바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4화.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멀리 간다

5화. 기회를 영원으로 만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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