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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Feb 28. 2018

[인도 라다크 여행 5]
기회를 영원으로 만드는 건

인도여행/인도 레 여행기

중학생 때였던가, 싸이월드가 한참 유행이었다. 사춘기의 호르몬에 휩쓸린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플랫폼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질 것 같은 감성글들과 멋진 이미지 위에 박혀 있는 명언들이 매일 넘쳐 흘렀다. 그때 만난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말들은 내 인생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동의했던 말이 바로 오늘의 주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명언. 처음 들었을 때는 흘려보냈었지만 몇 번의 어리석은 짓을 스스로 말미암아 겪고 나니, 저만큼이나 와닿는 말이 없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우리에겐 수많은 선택지, 즉 기회가 주어진다. 두 갈래, 세 갈래, 다섯 갈래...... 가끔은 정말 천 갈래처럼 보이는 기회의 갈림길 앞에 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어쩌다 이렇게까지 흘러왔더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을 정도로 어지럽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 기로에 서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누군가가 좋다고 추천한것을 선택할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선택을 한 이상 그 결과에 순응하고 책임을 질 수밖에.

참 우습게도,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주 가벼운 기회였다.


워낙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누브라밸리-판공초 여행이니만큼, 차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여러번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빠른 속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치거나, 좋은 포토 스팟에 멈추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창문을 내리고, 몸을 구부리고, 팔을 뻗고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딱 하루뿐이었다. 그 뒤로는 좋은 풍경이 보여도 카메라를 들 기운이 없어서 그만큼 열성적으로 찍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숙소로 돌아가 동행들의 카메라를 보니 장난 아닌 사진들이 넘쳐 흐르고 있는 거다. 거의 예술이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걸 먹으면서 여행했는데, 그들의 여행과 내 여행이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질투가 나서 순간 조용히 있었는데, 퍽, 하고 누군가 머리를 치듯이 작은 깨달음이 지나갔다. 이것 또한 내 선택이었다. 그들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을 영원하게 남기기를 선택했고, 나는 그저 조금 더 게을러지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자괴감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 후에,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쨌든 이렇게 여행을 떠나온 것도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수많은 순간 중 가장 좋은 결정이었지 않느냐고. 남들은 잘 하기 어려운 퇴사라는 결정을 어렵게 어렵게 해낸 것 아니냐고. 서른 살이 되기 전, 서른이라고 별 것 없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떠나기로 작정한 후 의미 있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냐고.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많이 사진을 찍자고.


근데 그 뒤로도 보니까 그냥 내가 사진을 못 찍는 거더라. 에휴.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던 누브라밸리-판공초 3박 4일 여행기,

첫 화부터 보러 가기>>>>>



제목을 누르시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1화. 같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2화.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아무도

3화. 거대한 바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4화.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멀리 간다

5화. 기회를 영원으로 만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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