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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C Apr 14. 2020

 그리움은
선물이자 벗어버리고픈 짐


    인생은 그리움으로 채워진 집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다 잃어버린 시계태엽 기차. 풋풋했던 시절 바라보기만 해도 설렜던 P. 가슴에 크고 단단한 이별의 옹이를 남긴 K. 첫입학, 첫만남, 첫키스, 첫출근, 모든 ‘첫’의 떨림 혹은 그 떨림의 순간. 우연히 만났던 아름다운 풍경들. 얽히고설킨 일들이 이상하리만치 술술 풀렸던 어느 하루. 나를 아끼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그걸 배반한 나로 인해 상처받고 떠난 J……. 

    그저 즐겁고 고마운 것들만 그리우면 좋으련만.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늘 행복한 마음으로 그리움을 기다리련만. 그러나 슬픔과 후회 속에서도 그리움이 핀다. 그런 그리움 앞에서 시간은 약이 아니라 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깊어지고 아픔도 심해진다. 

    말하자면 그리움은 선물이자 벗어버리고픈 짐이다. 즐거운 꿈이자 어서 깨고픈 악몽이다. 하지만 달건 쓰건 모든 그리움은 나를 나로 존재하게끔 만드는 거울이다. 더는 그 무엇도 그립지 않을 때가 온다면 그건 곧 내가 나를 완전히 잊었을 때일 것이다. 거울 앞에 선 이가 누구인지 모를 때일 것이다. 반복되는 매일이 낯설기만 할 때일 것이다.      


    특정 순간과 상황에서 발현될 감정의 최대치를 미리 알려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한 모든 변수를 적용해서 어떤 감정들이 생길지 예측하고, 그 감정의 진폭을 계산한 후, 결과를 수치로 보여주는 그런 장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갱년기라서 그렇다. 아무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고, 이유조차 없는 일에도 눈물이 쏟아진다. 가뜩이나 이럴진대 더는 큰 그리움들을 마주하기가 솔직히 버겁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불쑥 찾아오는 그 불청객들이 두렵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가슴의 크기가 다르다. 나는 전혀 대범한 사람이 아니다. 극히 소심하고 예민하다. 이런 내가 눈물마저 많아졌으니 문제다. 계속해서 무거운 그리움들을 받아들이다가는 온몸의 수분이 눈물로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현재 가지고 있는 그리움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이제부터는 훗날 나를 괴롭힐 정도의 그리움으로 발전될 그런 상황들은 철저히 피하고 싶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그리움만 취하고 싶다. 결코 병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준의 그리움만, 가끔 떠오르고 일상에 지장도 주지 않고 생각의 끈을 잘라버리면 의식의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는 수준의 그리움만 취하고 싶다.      


    나라는 존재의 집을 지탱하는 그리움의 조각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나를 미소짓게도 눈물짓게도 했던 시간들. 어쩌면 당신의 얘기인지도 모를 사건들. 나와 당신을 관통하는 미련들……. 내 그리움의 조각들이 현재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어떤 그리움의 조각들에게 말을 건네며, 미력이나마 당신을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게 된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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