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맞이하는 마음을 시작하며

by 여행하는가족

지금으로부터 사십 년 전쯤의 이야기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라 불렸다)에 입학할 무렵이었던 그 당시를 되돌아보노라면 딱 한 가지, 또렷하게 떠오르는 사실이 있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월등히 큰 아이였다. 1학년 신체검사 결과지에 140 센티미터 남짓한 숫자가 적혀 있었으니 같은 반 아이들보다 한 뼘은 더 큰, 한눈에 딱 봐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 시절 나의 신체적 성장은 순풍에 돛 단 듯 거침없었고 고학년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2차 성징까지 찾아왔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나기 시작한 나는, 이어 월경(月經)까지 경험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몸 때문에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들보다 앞서 어른들의 세계를 맛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쯤은 짜릿하고 자랑스러웠던 것도 같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잊히지 않는 그 시절 나의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키가 제발 170 센티미터까지만 크게 해 달라는 것. 하이고~ 그때 쓸데없는 기도 할 시간에 계속 쭉쭉 자라게나 해달라고 빌 걸!


간절한 소원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나는 위쪽 방향으로 자라는 것을 멈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릎을 최대한 쫙 펴고 발뒤꿈치는 공중부양 초기 단계처럼 바닥에 닿을락 말락 한 상태로 키를 재보아도 결과는 역시나였다. 나보다 작아서 늘 동생처럼 느껴지던 친구들이 하나, 둘 내 키를 넘어섰고 가장 뒷줄에 앉던 나는 점점 더 교탁 가까이로 자리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50 센티미터 초반의 키는 나의 최종 신장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성조숙증을 앓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때는 요즘처럼 성장판 검사 같은 것들이 흔하지 않았으므로 내 키를 단 몇 센티미터라도 늘여주겠다고 호르몬 주사를 처방받지 않았던 내 부모를 탓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여하튼 요점은, 나는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어른의 몸을 갖게 되었다는 것.


신체적 성장을 너무 일찍 끝내버린 난, 평범한 삶을 살아오다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이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 어릴 적, 어른들이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마치 엊그제 같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왜 자꾸만 엊그제 같다고 하실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나도 그 알다가도 모를 말을 종종 입에 올리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누워서 잠을 청하려다 심상치 않은 통증을 감지하고 급하게 산부인과로 향하던 날이며 오랜 진통 끝에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에 겨워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것을 쏟아내던 날이 마치 '엊그제 같은데'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우리의 아기가 어느덧 꽉 채운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된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의 몸은 늙어가고 있다. 거울을 때마다 늘어가는 것만 같은 눈가의 주름을 바라보면 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찌하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 그런데 변하는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매달 일주일을 꽉 채우던 생리 기간도 언젠가부터 나흘, 사흘, 그리고 이틀로 점점 짧아지는 게 아닌가. 십 대와 이십 대 때에는 약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했던 생리통마저 이미 내 곁을 떠나간 지 오래라 아, 이러다가 조만간 말로만 듣던 폐경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찾아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 참 이상하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근 삼십 년 동안 내내 귀찮게 했던 까닭에 하루빨리 내 인생에서 몰아내 버리고 싶은 존재였건만 막상 헤어질 날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의 한 챕터가 끝나버리는 것만 같아 떠나가는 생리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가지 말라 매달리고픈 마음이 들다니.


여행을 떠날 때면 나는 늘 생리대를 먼저 챙겼다. 지리도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그것을 사겠다고 낯선 길을 헤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휴가를 준비하면서도 필요한 위생용품들을 일찌감치 챙겨 넣었다. 주기가 비교적 일정한 편이라 여행 중반쯤이 되면 귀찮은 시기가 다시금 찾아올 것이 뻔했으니까.


새로운 곳을 보고 즐기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일은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그렇게 중반이 지나고 여행의 후반부에 접어든 어느 날 문득, 챙겨 온 위생용품 가방을 열어볼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계산해 보니 예정일로부터 벌써 일주일쯤이 지난 후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폐경기가 되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즐거웠던 여행 덕분인지 나는 아직 우울하지는 않으니 그건 다행이긴 하네. 그래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이런 날이 찾아오다니...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어디선가 미스터 우울씨가 당장이라도 나타나 내 마음의 문을 똑똑똑 두드릴 것만 같아 갑자기 기분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간, 나는 폐경과 관련한 온갖 단어들을 틈 날 때마다 검색창에 입력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에서 건져 올린 정보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 몸의 상태와는 비슷한 점이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어라? 이상하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들인 것 같은데? 촉이라는 게 있지 않나. 나는 방향을 180도 틀어 임신초기 증상에 대해 찾아보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새벽녘에 눈을 뜬 나는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남편과 아이 몰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 놓고 신께 비는 경건한 마음으로 아침 첫 소변에 미리 사 둔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 보았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테스트기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의미의 한 줄, 그리고 임신이 되었다는 의미의 한 줄, 이렇게 두 개의 줄이. 세상에... 폐경인 줄 알았는데 임신이라니!


이렇게 작았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이만큼 컸는데 곧 동생이 생기게 되었네.



안녕하세요? '여행하는가족'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미입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어느 순간이 특별하지 않겠냐마는, 2023년은 저와 제 가족에게 유독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아! 2023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니 특별한 한 해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2013년 겨울, 저희 부부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듬해 가을에 아이가 태어났어요. 둘에서 셋이 된 저희 가족은 서로 마주 보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삼각형처럼 이대로 참 좋다고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이의 아홉 살 생일을 얼마 앞둔 어느 여름날, 다시 한번 저희 가정에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두둥! 그것은 바로 둘째!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포기했다고 해야 옳을까요? 예상하지 않았기에 더 크게 다가온 소중한 선물을 맞이하는 저와 남편, 그리고 첫째 아이의 마음을 이곳에 차곡차곡 담아보려 합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글을 연재하는 것은 처음이라 떨리기도 하고 과연 글을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뱃속의 둘째를 맞이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끝을 맺어보겠습니다. 제 글이 소중한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는 분들께,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을 뒤돌아 보고 싶은 분들께 온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매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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