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의 슬픔과 기쁨

그래서 제 결론은요

by 여행하는가족

"세에사앙에에에~~ 너는 어쩜 고등학교 때랑 또옥~ 같다아~!!"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호호호호호."

"맞아, 맞아!"


요란한 웃음소리와 손뼉 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그곳에는 발랄한 여고생들 대신 적게 잡아도 예순은 훌쩍 넘겼을 듯싶은 발랄한 초로의 할머니들이 모여 있다. 염색으로도 완전히 감출 수 없는 흰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과 손에 잡힌 주름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기쁨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표정만큼은 정말로 고등학생 같기만 하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날 때면 실제 지금의 모습에 우리가 서로를 처음으로 알게 된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이곤 한다. 인지 과정에는 지금 이 순간, 눈으로 보는 사실뿐 아니라 눈에 담기는 대상에 대해 지니고 있던 과거로부터의 지식이나 경험이 함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테다. 할머니들이 서로를 십 대 소녀 같다고 칭찬할 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새파랗게 젊었던 내가 어느샌가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가 자꾸만 쳐지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도 너는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는 거니, 누가 보면 이십 대라고 하겠다며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그들도 차마 십 대 같다는 소리는 입에 올리지 못하는 듯하다. 이것이 우리의 최소한의 양심).


예상치 않았던 둘째 임신 사실을 확인한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첫째 출산 이후로는 갈 일이 손에 꼽히던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접수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딱 봐도 나보다 족히 열 살씩은 어려 보이는 산모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만혼(晩婚)이다 뭐다 해서 고령 산모도 많다는데 다 거짓이었나? 옆에 꽂혀 있던 잡지를 하릴없이 뒤적이며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다 실패한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의사가 기다리고 있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기가 자궁에 잘 자리 잡았을까요? 제가 노산이라서요..."


인사를 건네자마자 죄지은 자 이실직고하듯 내뱉는 내 말을 들은 의사가 나의 신상이 적혀 있을 게 분명한 스크린으로 눈을 옮겼다. 그러더니 내 이마에 지울 수 없는 도장을 탕탕탕 찍듯 말했다. "아~~ 나이가 정말 많으시구나."


늙을 노(老), 낳을 산(産), 노산(老産).


만으로 35세 이상 되는 여성이 출산을 하게 될 경우 노산, 즉, 고령 임신으로 분류된다. 고령 임산부는 임신으로 인한 합병증을 겪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임신 초기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첫 아이를 임신한 것이 아니라면 초산 산모에 비해 위험이 덜하다고는 하나 나이가 어린 임산부보다 어려움을 경험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예상되는 대표적인 문제로는 고혈압, 임신중독증, 조산 또는 난산, 그리고 기형아 출산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것은 내 나이 꽉 채운 서른네 살 하고도 반년쯤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초산부터 이미 고령 임산부 카테고리에 엄지발가락 하나 얹고 시작한 셈이다. 이 와중에 다행스러운 사실은,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내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체질을 타고났다는 것. 나는 임산부에게 흔하다는 입덧 한 번 경험한 적 없이 무엇이든 잘 먹었다. 매 끼니를 잘, 솔직히 말하자면 때로는 과도하게 잘 챙겨 먹은 덕분에 아이를 품고 있던 배만 커진 게 아니라 사이즈가 그대로여도 괜찮았을 곳들에까지 고루 살이 붙었는데 몸은 비대해졌어도 체력만은 딸리는 법이 없어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아이를 낳으러 가던 날 저녁까지도 신나게 여행하고 이리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임산부로서의 삶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평소에 특별히 건강식을 챙겨 먹거나 꾸준히 운동을 해 온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열 달을 보낸 나는 이런 게 임신이라면 열 번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참으로 오만방자한 생각까지 했더랬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이런 게 임신이라면 열 번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할 정도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우리 부부에게 처음으로 2세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날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나와 남편의 몸에도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것은 물론이다. 마치 90년대에 만들어진 표어를 연상시키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류의 의지가 확고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셋으로 완성된 것 같으니 이대로의 삶에 만족하자, 둘째 생각은 접자라고 마음먹고 살아가던 어느 날, 놀랍게도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예상했던 일이었다면, 혹은, 계획한 임신이었더라면 미리부터 엽산이랑 각종 비타민을 골고루 챙겨 먹었을 텐데... 가는 세월 손 잡고 집 나가버린 체력을 운동을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되찾아 두었을 텐데...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던 터라 그야말로 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의 직격탄을 맞은 몸으로 다시 한번 임산부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말았다.


노산의 슬픔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던 날에는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했었다. 내가 엄마가 되다니! 나에게도 이런 행복이 찾아오다니! 그런데 둘째의 임신을 확인한 순간에는 기쁨과 더불어 굳이 안 찾아와도 되는 놈이 더불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녕? 나야, 나. 두려움. 나는 임신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보자마자 출산예정일을 계산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마흔 중반의 문턱에서 다시 한번 신생아 엄마 노릇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고령 임산부인 나와,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남편 사이에서 만들어진 둘째가 과연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오래전 티브이에서 방영했던 <병원 24시>라는 의학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온갖 질병과 사고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이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힘들게 해 즐겨보지는 않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갑자기 다리에 문제가 생겨 멀쩡하던 그것을 절단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삶을 지켜보며 무섭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 다리도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싶으면서도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그날 오후 결국, 집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건강해 보이기만 하는 내 다리를 살펴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반드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나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자꾸 그러냐고 물으셨고, 우물쭈물하던 난 어쩔 수 없이 어제 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다. 그날 그분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사십 년 가까이 의사 생활을 해왔지만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와서 엑스레이 찍어 달라고 조르는 환자는 이유미 씨가 처음이네요."


나 스스로가 병원과 관련된 일에는 유독 겁이 많고, 가끔씩은 쓸데없는 상상력까지 너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왜 그랬을까.


고령 임산부와 고령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찾아 읽다 보니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뱃속의 둘째 생각만 하면 나는 겁쟁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처음 산부인과에 가던 날은 아기집이랑 난황이 안 보일까 봐 무서웠고 아기집이랑 난황이 보이자 이번에는 심장이 안 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우렁찬 심장 소리를 듣고 눈물이 날 만큼 안도했던 것도 잠시,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아이가 살아있는지 걱정돼 잠도 쉽사리 이룰 수 없었다(일반적으로 태동은 임신 20주 차 전후부터 느낄 수 있다. 태동이 안 느껴진다고 걱정을 하던 당시 나는 임신 10주 차도 안 된 상황이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사서 할 만큼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도 머리만 대면 꿀잠에 빠지던 내가 자다가도 몇 번씩이나 깨어나 걱정으로 몸을 뒤척이는 나날이 이어졌다.


고령 산모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정신적인 부분에서 기인한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다행히 이제는 잦아졌지만 나는 입덧이 무엇인지 둘째를 품고서야 깨닫게 되었고, 첫째 때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전치태반* 소견을 받기도 했다. 산부인과 담당의 선생님은 유산방지약을 처방해 주시면서 나에게 3 금지령(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 같은 힘든 일 금지, 운동 금지, 남편과의 관계 금지)을 내렸고 가급적 누워서 시간을 보내라 하셨다. 남편과 아이가 직장으로 학교로 떠나간 아침마다 최소한의 집안일을 빠르게 끝내고 자리에 누운 나는 뱃속의 둘째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아이와 자궁을 나눠 쓰고 있는 태반이 스르륵 자궁의 위쪽으로 옮겨가는 상상을 했다. 마치 손대지 않고도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마술처럼, 나의 간절한 생각만으로 태반의 위치가 이동하기를 바라면서.


*전치태반: 태반은 모체의 영양분을 태아에게 전달하고 동시에 태아가 배출하는 노폐물을 모체로 전달하는 생식기관을 뜻한다. 정상적인 경우의 태반은 분만 시 태아가 모체의 몸 밖으로 나가는 통로인 자궁 입구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자궁 내부 위쪽에 위치해야 한다. 그러나 태반이 자궁의 입구를 가리고 있거나 근처에 걸쳐 있는 경우 전치태반으로 분류하며, 이는 고령의 산모, 흡연자, 제왕절개 경험이 있는 산모, 유산을 경험했던 산모, 다산모, 둘 이상의 태아를 동시에 임신한 산모에게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전치태반은 통증 없는 출혈을 동반한 유산과 조산 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때 간혹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다 한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비행기를 아홉 시간이나 타고 한국까지 날아가 받았던 건강검진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가슴 양쪽에서 저에코 결절이 여러 개 보이는데 불과 10개월 사이에 크기가 상당히 커졌고 경계도 불분명하니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조직 검사든 뭐든 받아보고 도인지 모인지를 가리고 싶었으나 태아를 위해, 임신 중기에 접어든 이후에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몇 개월을 보냈다. 다행히 긴 기다림 끝에 며칠 전 드디어 유방전문의를 만났고 다시 한번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악성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아직 아홉 살 밖에 안 된 첫째 아이와 내 안의 둘째,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라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진심을 담아 빌고 또 빌었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노산의 기쁨

하나의 동전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고 자석에도 N극과 S극이 이웃하며 존재하듯, 삶의 순간 마다도 전혀 다른 모습이 공존한다고 믿는다. 어느 쪽을 바라볼지는 오로지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 또한.


임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보다 낙천적이라 자부하며 마음 편히 살아왔던 나였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다시 한 번 임신을 하고 나서는 걱정 주머니를 달고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이 "컨디션 어때요?"라고 물으면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더할 나위 없어 너무너무 좋아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아직도 걱정이라는 놈이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일랑 접어두고 인생의 밝은 면에 집중하려고 한다. 폐경에 가까워 온 나이에 자연 임신을 했다는 사실부터가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 홀수였던 우리 가족이 조만간 짝수가 되어, 나와 남편이 따스하고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두 아이를 한 명씩 끌어안고 여유로운 휴일 오후를 보내는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먼 훗날, 우리 부부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도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형제자매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 또한 비할 데 없는 기쁨이 아닌가.


십 년 전, 첫째를 임신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분명 몸도 마음도 고단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결론은 노산이어도 기쁘다는 것, 아니, 노산이어서 기쁘다는 것.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겁 많은 고령의 엄마는 오늘도 힘차게 외쳐본다.


여러분, 저 기뻐요!

노산이어서 두 배로 더 기쁘다고요!

이 기운을 그대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건강한 둘째 아이를 품에 안는 그날까지요!


우리의 첫째 아이, 여행이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던 날의 모습. 둘째야, 너도 이렇게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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