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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미 Mar 06. 2024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일본에 가다

첫 해외 출장


2월 17~19일 일본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을 관람하러 오사카에 다녀왔다. 일본어로 공연되는 내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들리고 느껴질까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일본관객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한국과 다르게 어떤 무대에서 어떻게 연출될지도 기대가 되었다.


코로나 시기에 내 여권이 스르륵 만료되어 있었기에 이번 출장을 가장한 여행을 위해 여권을 다시 만들었다. 사진을 찍고 재발급 신청을 하면서 벌써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 들어 퍽 들떴던 것 같다. 어느새 출발날이 다가왔고 바쁜 와중에 끼어있던 일정이라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나 돈을 아끼느라 외항사만 이용했던 나는 국적기를 타면 일본을 가도 기내식이 나온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오사카 공항에 도착했다. 십여 년 전 내 첫 여행지였던 오사카에 일로 오게 되는 날이 오다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오사카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따뜻했고, 복잡했으며,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구름 위


 일본 제작사 측에서 마련해 주신 리무진을 타고 오사카 호텔에 짐을 푼 다음 잠깐의 자유시간을 갖고 극장으로 향했다. 효고현에 위치한 공연장은 역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꽤나 역사가 깊은 오래된 공연장이었다. 한국의 윌리엄이 20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진행되었다면 일본 공연장은 800석이라고 했다. 거의 중극장 수준으로 극장이 넓어졌는데 3명의 에너지로 극장을 채울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음악의 에너지는 대극장 못지않아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는데. 이야기의 규모나 등장인물 수가 적은데 과연... 하는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이곳에도 이곳의 전문가들과 이곳의 베테랑 배우들이 존재하니까 그분들의 손을 거쳐 또 다른 윌리엄이 태어나는 것이니 걱정보다는 기대였던 것 같다. 제작사 관계자분들과 간단한 인사를 한 후 극장에 들어갔다. 이미 많은 관객분들이 자리해 주시고 계셔서 떨리고 긴장된 기분으로 좌석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 일본에서 공연을 본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극장이 아니라 양산박 텐트 극장이어서 (하하) 정식 극장에 착석해 보는 건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아! 시모키타자와의 작은 소극장엔 가보았다. 이런 본격적인 극. 장. 은 처음이었다.) 일본의 윌리엄은 영상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무대이곳저곳에 영상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자, 지금부터는 일본 윌리엄의 재미있었던 점


1. 번역에 대한 이야기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 신주쿠 양산박의 작품의 자막 작업을 할 때 늘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었다. 일단 원작자는 번역된 것에 100센트 무조건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의견을 좁혀가느라 많이 힘들었지... 원작자분께서 한국말을 잘하시는 자이니치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왜냐하면 대사들이 그 나라의 정서에 맞게. 공통된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문화를 베이스로 이해시킬 수 없는 이야기들은 좀 더 직설적이게 의역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작자가 100센트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명확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윌리엄의 경우는 더더욱 음악과 가사가 존재했으므로 정해진 음가 안에서, 일본 정서에 맞게, 의미 전달이 명확하게 많이 의역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핵심문장이라고 생각하는 ‘꿈을 꾼다는 건 삶에 대한 믿음을 갖는 일’ 같은 다소 시적인 문장은 ‘꿈을 꾼다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삶은 의미가 있어’ 정도로 번역되었던 것 같다.(정확하지 않다. 가사로 흘러가버린 부분이라) 그리고 가사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내가 담아 놓은 말들을 다 집어넣으려면 많은 음가가 필요한 느낌이었기에 통째로 날아간 부분이 있었고, 그럴 경우 더 필요한 말들을 취사 선택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자막 만들 때 고민했던 이런 부분들을 고민했을 번역 스텝분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그 혹은 그녀가 이 작품을 가장 밑바닥부터 들여다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그랬거든. 아무튼 일본어로 듣는 윌리엄은 생소했고, 또 신선했다. 내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볼까 싶어 하나하나 귀에 담기 위해 열심히 들었다.


2.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있었다!

음악팀들도 무대 위에 있어서 배우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무대를 꾸며줬는데 (극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게 아니라 배우의 호흡에 집중하며) 무대 위에 있는 오케스트라(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인조였지만) 여러모로 신선했다. 그리고 일본 윌리엄은 기본적으로 한국과 편곡이 좀 달랐다. 조금 더 프리하다고 해야 하나. 우리는 악보를 다 그려서 그대로 매번 공연했다면 일본은 어느 구간은 애드리브. 어떤 멜로디는 더 적극적으로 현악기가 한다던가, 뭐 이런 부분이 있었던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정말 흥겨워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는데 H의 소문소문소문 노래였는데 아주 잘게 쪼개진 스윙리듬으로 달려 나가는데 음악팀 행복해 보이더라. 아무튼 재미있었다. 작곡가님 말로는 노래 키들 낮추지 않고 쌩으로 다 지켜줬다는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 정말. 한국 윌리엄 노래가 결코 쉬운 게 아니었으므로... 너무 고생하셨을 것 같아서, 그리고 정성스럽게 연주해 주셔서 감사했다.


3. 영상이 적극적으로 쓰임

첫 노래 배경이나. 극 중에 알파벳으로 노래하는 부분 같은 경우 적극적으로 영상이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도 영상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우리는 정말 아날로그 하고 다락방 같은 걸 원한다고 이야기해서 우리는 택하지 않았던 선택지를 일본에서 선택해 줘서 재미있었다. 특히 살롱씬에서 에이치가 여러 그림의 주인공들의 얼굴이 되는 연출이 신선했다.


4.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 헨리는. 정말 헨리 나이의 배우가 맡고 있었다. 우리가 간 날 기준 전날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여하고 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 정말 헨리 나이의 헨리를 보게 되다니. 매우 신선. 그리고 신기. 헨리 나이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퇴장도 없이 13곡의 엄청난 노래들을 해내야 했는데 그는 대단했다. 아이돌 친구였는데 역시 무대 짬(?)은 지울 수가 없는 거였다. 뭐랄까 그래서인지 자꾸 우쭈쭈 하며 보게 되더라. 한국 헨리들과 다르게 캐릭터 해석을 한 것 같았는데 18살이란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었다. 그는 뒤풀이 자리에서도 아직 술을 마실 수가 없어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아 큐티 뽀짝했다. (키는 180이었지만) 첫 뮤지컬이라고 하던데 좋은 기억이었어야 할 텐데. 나중에 다른 멋진 자리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예를 들면 드라마라던가)


사무엘 배우님. 뭐랄까 나는 이 극에서 사무엘이 가장 잘 보였다고 느껴졌다. 사실 내가 사무엘 캐릭터에 나를 많이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분께서 해 주신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사무엘의 다소 캐릭터 같지만 우습지 않고 가볍고 유쾌한 연기에서 사무엘의 결핍과 슬픔이 더 느껴졌달까? 사무엘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노래와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씬 몇 개를 정말 낭비하지 않고 잘 사용해 주셨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뒷부분에 ‘윌리엄과 윌리엄의 이야기’에서 ‘밤처럼 가만히~’ 이 부분을 부를 때 슬펐다. ㅜㅜ 한국에서와 조금 다른 사무엘을 만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성민 배우를 닮은 사무엘 선생님이 표현해 주신 사무엘은 달라서 좋았다. 열심히 대본 봐주신 것 같아서 많이 감사했다.


H씨. 일본에서는 미스터 에이치가 되었다! 일본에서 잘 볼 수 없는 장신 배우분께서 순백의 옷을 입고 무대를 누비셨다. ^^ 능청스럽고 좀 더 헨리의 멘토 같은 느낌이 강했다고 할까? 헨리가 어려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헨리가 되고 싶은 모습인 동시에 친구보다는 아버지의 모습이 좀 더 투영된 느낌이었다. 에이치쇼 부분에서 무지갯빛 조명 아래에서 자유롭게 무대에도 내려오시고 하셔서 재미있었다.


 공연 후. 오꼬노미야끼 집에서 신나는 뒤풀이를 마련해 주셨다. 그간 궁금했던 작품에 대한 부분이나, 한국과 일본의 뮤지컬 시스템 같은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내가 겪은 일본극단 양산박과는 너무나 달라서 흥미로웠다. 재미있는 출장이었다. 뒤풀이 후에는 호텔까지 택시 태워주셔서 ㅜㅜ 자동문 열리는 일본 택시도 처음 체험해 보았다. 감사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이번 출장을 계기로 또 꿈이 생겼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여행 말고 작품으로. 그 ‘또’가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좋다. 책이어도 좋고, 드라마여도 좋겠다. 꼭 노력해서 다시 작품으로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열심히 할 이유가 생겼으니 오늘도 열심히 써야지.


 아, 그리고 아래는 공연 이외의 자유시간에 갔던 여행지의 기억들.


P.S.

그나저나 일본 윌리엄에서는 헨리가 버린 ‘리차드 3세와 유령들’이 화로에서 활활 타올라버리던데 어떻게 사무엘이 법정에 가져올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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