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Apr 06. 2021

불안정함과 연약함을 품고

한숨도 부러웠던 사춘기 엄마의 일기

선도에 다녀온 이후로 앵두는 휘청거렸다. 굳이 자신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선도까지 보낸 담임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거고,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않았을 거다. 학생을 한 인간으로 전혀 존중하지 않은 이상한 분위기를 겪은 후, 아이는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사람처럼 산만해졌다. 학교에 가긴 했지만 지각을 더 자주 했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징계로 나온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러 매일 아이는 교무실에 가서 깜지를 쓰고 오거나 학교 청소를 하고 와야 했다. 부당하게 선도에 갔다고 생각했던 아이한테는 아마 그때의 하루하루가 곤욕이었을 거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아이 눈빛은 빛을 잃고 실망감이 두껍게 쌓여간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어른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사라지면서 남게 되는 것은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자극적인 쾌락과 즐거움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딸이 대단한 말썽을 피웠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좀 걱정과 염려가 많은 엄마였던 것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앞서서 걱정했고, 딸이 눈에 보이면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으면 안 보이는대로 온갖 나쁜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불안해했다. 그때 난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뭔가 상황을 해결해보겠다고 아이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안 좋아졌고, 관계는 계속 틀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휘청거리고 있더라도, 부모는 커다란 나무가 돼서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나도 처음 겪는 일들에 당황해서 흔들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뒤돌아보니 학교에는 부당한 처벌에 단호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아이에게는 ‘누가 뭐래도 가족들은 네 편이다’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고 털어버리고, 부당하고 잘못된 것들을 상대로 엄마가 씩 웃으며 거뜬히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꼭 학교에 매일 갈 필요도 없었고, 괜히 시끄러우니까 규칙은 철저하게 지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놈의 모범생 세포가 부모 노릇을 하는 데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됐던 거다. 


사춘기의 열병이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던 몇 달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남편은 사람이 이렇게 한숨이 계속 나올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됐다고, 그리고 이렇게 한숨이 계속 나오게 되면 정말 잘못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무심코 던졌다. 나는 그와 반대로 한숨도 부러울 만큼 마음이 답답했다. 가슴이 숨 쉴 구멍 없이 밀봉된 것처럼 억지로 심호흡하지 않으면 숨이 찼다. 계속 해결되지 않고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노폐물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슴 양쪽이 저리게 아파올 때까지 숨을 크게 쉬어보라’고 말하는 이하이의 ‘한숨’이란 노래 가사가 뼛속까지 마음을 찔러왔다. 그 노래 가사대로 진짜 ‘내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숨을 뱉어보고’ 싶었다. 


그해 겨울밤에는 딸아이와 되돌이표만 찍게 되는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나누며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든 뭐 하나라도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딸은 이미 먼 길을 떠나왔다고 포기하는 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평행선만 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랬었구나’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 말 한마디가 다른 아이들에게 말할 때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나는 그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그게 아프게 다가왔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해서 몇 번이고 주문처럼 되뇌어야 하는 말이었다. 


조급하지 않게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큰 것을 이루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가고, 그 하나를 이룬 것에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번 실패했다고 해도 조급하게 좌절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나의 중심을 찾아야 했다. 세상은 불확실했고, 선은 때론 악을 품고 있고, 악은 어쩌다 선을 품기도 했다. 딸이 직면하는 모순과 부조리는 내가 30여 년을 지겹도록 부딪히고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연약함인데, 14살 아이가 아무 흔들림 없이 그 터널을 통과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다.


나는 그 불안정함과 연약함을 품고, 한 발 한 발씩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짧은 길을 혼자 걸을 때도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내면에서 수없이 메아리쳤다.

‘내가 아무리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당장 눈에 보이는 이 순간에만 전부를 걸고 있으니까 두려운거야. 폭풍우 한가운데에서는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폭풍우는 경국 언젠가 잠잠해질 거고, 시간은 분명 또 다른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거야.’

그때 난 이 말을 주문처럼 되뇌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을 만큼 예측불허였고 캄캄했다. 지금처럼 마음의 평화가 오게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전 03화 학교에서 아이들은 존중을 배울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