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는 왜 서울에 있나]
저녁 10시, 여의도 한강 공원
“와이리 춥노”
더플 코트 주머니 속 핫팩이 미적지근하다.
강추위에 한껏 움츠리고는, 코트를 여미고 강 둔치를 걸어간다.
‘I Love Seoul You’ 조형물 뒤로 반짝이는 빌딩 숲이 장관이다.
대교를 지나는 끝 없는 자동차와 긴 지하철.
정장 차림에 브리프 케이스를 흔들며 퇴근하는 직장인.
그래, 이건 내가 생각했던 서울이 맞다.
4년 전, 당시 이십대 후반이던 나는 직업 군인으로 전역했다.
바깥 세상엔 흥미로운 일이 많을 거라며 당차게 군복을 벗은 김 중위는
인생의 낙을 퇴근과 야채 곱창이라 말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군 시절, 경기도에서 근무하던 동기 녀석과
주말마다 여의도 한강 공원 둔치에서 맥주를 마시고는 했는데,
".. 우리 전역하면 서울 다시 오겠나?"
"취업하면 오지 않겠나, 근데 서울에 취업이 쉽겠나, 잘 모르겠네"
임관부터 취업 걱정을 시작하던 친구 녀석은 서울 상경에 회의적이었다.
"오면 이 야경을 매일 보는 거 아이가. 나는 서울 올라올란다"
"서울 좋지.. 근데 대구서 편하게 댕기는 것도 안 낫겠나?"
"거나 여나 똑같지.. 그럴 거면 서울 살아봐야지"
난 결국 대구 고향놈들 중에서 1등으로 올라온 놈이 됐다.
전역 후 앞머리가 눈썹에 닿기도 전에, 취업으로 상경한 나는
동네에서 꽤나 화제였고, 누구에겐 자극도 되었다.
기차에서 콧구멍을 벌렁대며 상상했던 서울 라이프는,
평일엔 고층 빌딩에서 폼나게 퇴근하고
유명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한강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주말엔 멋진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성수와 이태원에 들러 피자를 먹고 집에 돌아와 야경을 감상하는,
허름한 간부 숙소의 문을 열고, 마포역까지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온 군인 아저씨의 눈에 비친 서울은
그런 것이었다.
…
한강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올라온다.
무성이는 뭐 하고 사려나,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여본다.
칼바람에 손이 아려온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더니 수화기 너머로 걸쭉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 왜"
"뭐 하노 무성아"
"집이지, 밥 먹고 쉰다"
휴대폰 스피커 너머로 거실의 티비소리와 주방의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잘 사나 ~ 내 지금 한강 공원이데이"
"오랜만이네, 우리 자주 갔었다 아이가?"
" 기억나제, 여기서 전역하고 꼭 서울 올라오자 캤었다 아이가"
"그랬지. 어떻노, 살만하나?"
말문이 턱 막힌다. 지금 살만한가?
아무래도 당시 군인 아저씨가 꿈꾸던 삶은 아닌 거 같은데.
"야야, 확실히 서울은 다르다. 니도 빨리 올라온나"
"회계사 합격하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재밌게 놀고 있어라"
".. 그래~ 조만간 대구 가니까 그때 보자, 공부 열심히 하고"
전화를 끊고 한강을 바라본다.
한숨으로 뱉은 입김이 눈앞을 가린다.
그래, 사실은 이게 내 대답이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서 전화를 끊으니,
착잡한 마음이 몰려온다.
네이버 지도를 보니, 곧 지하철 막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구나. 놓치면 택시를 타도 한참이다.
헐레벌떡 여의나루역으로 뛰어가다가
잠시 멈춰 한강을 돌아보고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뛰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