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처음부터 안 살았던 집은 나도 안 가..
사실 부제목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놓았다. '처음에 집주인이 살지 않은 집은 가지 마세요'. 너무나도 성급하게 계약금을 입금했던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탓해본다. 아빠 나빠요!! 엄마는 바보야! 등기부등본 깨끗한 분양 주택에서만 살아봤기에 뒤늦게 느끼게 된 고통들을 여기에 적어본다.
갑자기 아파트를 사고 난 뒤의 감회: (적어도 무조건 최초 2년은) 집주인이 살았던 집으로 가자
앞선 이야기에서 신축 아파트의 일반적인 하자보수 기간은 2년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어떤 부분은 3년이기도 하고, 그보다 긴 것들도 있다지만 대체로 2년 안에 하자보수를 신청해야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 입주 후 2년은 집주인이 살았던 집으로 가야, '내 집'이라는 의식 하에 열심히 살펴보고 고친 흔적이 묻어나는 집으로 갈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세입자가 들어갔어도 그 사람이 세심한 성격이라면 집주인에게 이것저것 고쳐달라고 했겠지만 세입자의 성격을 어찌 알겠는가.
안타깝게도 내 집에 살았던 세입자(남자였다)는 영 집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싱크대 서랍에 식칼 꽂이가 없는데도 그걸 달아달라고 말하지 않았고, 난방 조절기가 따로따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도 몰랐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실내 환풍기 시스템과 화장실의 환풍기가 같이 돌아가는데 이에 대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 딱 사용해 보면 이상한 점이 바로 보이고 들리는데 이걸 몰랐단 말인가? 이런 건 세심함이나 꼼꼼함 축에 들어가지도 못할 일인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식칼 꽂이는 내가 달았고 나머지 두 개는 관리사무소에 문의할 예정이다.
집주인이 '내가 들어가서 살 집'이라는 의식을 가졌던 집은 옵션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가전제품이야 없을 수 있지만 설치형 빨래건조대가 옵션인 줄 몰랐던 나와 엄마는 처음 집에 들어가고 나서 빨래를 널 공간이 없어 한동안 고통받았다(...) 또 변기는 엄마에게 특히 결정적이었다. 집에 설치된 양변기는 자동 물 내림 기능은 있는데 세정 및 비데 기능이 없었는데, 버튼도 달렸고 리모컨도 있고 안쪽에 노즐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 우리를 힘차게 낚았다. 사용설명서를 보고 모델명 및 기타 사항을 보고 난 뒤에야 우리는 비데 기능이 없다는 걸 인정했고 엄마는 현재 변기 교체 혹은 비데 설치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쯤 되면 바닥 찍힘이나 서랍 얼룩 같은 사소한 건 논외로 쳐야 할 것 같다. 심하게 찍힌 바닥은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우드퍼티를 사서 처리했다. 가성비가 상당히 좋다! 하지만 서랍에 무슨 짓을 했는지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ㅠ_ㅠ
사실 잔금 치르는 날에 이전 집주인은 하자 보수를 집어내는 업체를 동반해 접수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불타는 붉은 영혼의 소유자(마르크스주의자라는 뜻)인 나의 시각에서 자기가 산 집에 처음부터 살지 않은 사람은 투기꾼이요 자본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에게 필수재인 주택을 실거주할 생각도 없이 사들여 일종의 자본처럼 굴리고 재산을 축적하려는 자! 딱 봐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아, 억울하다. 우습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에 반하는 집을 산 셈이다. 나의 붉은 피에 심심한 사과를 올린다.
그렇지만 이제 그곳은 내 집이니 잘 보듬으며 사는 수밖에. 더불어 세상에 배움 없는 실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