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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문화재와 함께 사는 것처럼

어색하지만 유의미한 공존에 관해

by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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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도시에서 태어나 개발 계획에 따라 꾸며진 동네와 택지 지구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런 곳은 확실히 주변이 잘 정돈된 느낌이고 학교가 촘촘히 배치되어 있는 것 같다. 길은 대부분 평지고 아파트가 많으며 오래된 주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업 시설은 대체로 가까이 있으면 좋은 것들, 그러니까 병원과 약국, 피트니스 센터, 학원, 식당, 카페, 마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모로 편리하고 깔끔하며 살기 좋다.


그런 점에서 새로 오게 된 동네는 내가 지금까지 살던 곳과는 판이하다. 일단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다. 별생각 없이 걷다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경사를 곧잘 만나게 되며 낡은 주택도 많다. 정비되었으면 좋겠다, 혹은 길이 조금 넓었으면 좋겠다 싶은 구석도 종종 보았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타로점 보는 곳부터 기부 상점까지 훨씬 다양한 종목들이 상권을 구성하고 있다. 대형 마트보다 시장이 더 가깝다는 점은 정말 큰 차이다. 덕분에 산책하며 주변을 구경할 때마다 기분이 새롭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전에 내가 살던 환경과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은 '오래된 것과의 공존'이다. 대규모 현대인의 거주를 목적으로 삼고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존재했던 오래된 건물과 흔적들이 있다. 골목에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고 포장된 길은 그것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뻗어 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 건물조차 그것만의 사연을 담은 안내 석판을 내세우고 있는데 다 나에겐 신기한 풍경이다.


이런 부분이 현실적으로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 묻는다면, 전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줄 수는 없다.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최상의 입지'를 갖춘 동네는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최근의 기억 하나를 떠올려본다. 지도 앱 상에서 공원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을 가보려다가 거의 등산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진짜 한 문화재가 위치한 산이었다. 조금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자각 없이 역사적 장소로 등산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한다는 게 어딘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얼떨결에 조망하게 된 도시는 불규칙하지만 생동감 있는 모양을 띠고 있었다.


사실 공존이란 영원히 어색함과 떨어질 수 없는 개념 같기도 하다. 때로는 나조차 낯설게 느껴질 때가 아닌데 내가 아닌 것과 같이 있으려면 얼마나 부자연스럽겠는가. 엄마 노릇, 자식 노릇, 회사의 직원 노릇, 연인 노릇, 개인이 그 모든 다채로운 구실에 통달하지 못하는 건 독존이 아닌 타자와의 공존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심지어 계획적이지도 않다. 인간의 삶과 역할에는 무엇을 밀어내고 어떤 걸 세워야 할지 정해주는 사업 시행 지침 같은 게 없다.


나는 우연히 만난, 다소 오래됐고 고르지 못한 지평선을 보면서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나의 여생을 엄마와 이곳에서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도 아마 어색할 것이다. 준비도 없이 산에 올라왔다고 불평하는 중인 내 무릎만큼 까탈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와 함께 숨 쉬면서 우리를 받아준 이 도시처럼, 결국엔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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