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5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꿈의 잔상이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꿈속의 시각적 이미지들이, 흩어지지 않고 제대로 초점을 맞춘 것처럼 더 또렷해졌다. 정비창에 나가야 할 지 고민했다. ㈜옥토끼에 와서 한 번도 일을 빠져본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 귀찮아질 것 같았다. 뭔가 그럴듯한 설명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출근하긴 했지만, 그날 내내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잠을 못 잔 날보다 오히려 상태가 더 심각했다. 그 꿈의 잔상 때문이었다. 검측기를 떨어뜨리고 케이블을 잘못 연결해 경고음이 울리게 하는 등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레오가 나에게 다가왔다. 짐짓 걱정스럽다는 표정까지 지으며 말을 건넸다.
“어디 아파?”
나는 질색을 하며 물러났다. 목소리가 높고 컸다.
“신경 쓰지 마. 니 일이나 해”
레오라는 존재가 몹시 더럽고 불쾌했다. 꿈이 꼭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 같아서였다. 레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로건이 내 쪽을 흘끔거리다가 얼굴을 돌렸다.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느껴지는, 삐딱하게 기운 얼굴이었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프면 조퇴하던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두 사람이 나를 협공하고 있었다.
서러웠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천장을 쳐다봤다. 조이는? 내 시선이 조이를 향했다. 조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긴 수염으로 공간의 긴장감을 간파하고 위험을 감지해 거리를 두는 고양이처럼, 조이는 자재 창고 문 앞에서 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꿈은 타인이 들여다볼 수 없는 건데,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꿈일 뿐인데. 잘못이 있다면 조이나 로건, 레오가 아니라 그런 해괴망측한 꿈을 꾼 나에게 있는 거였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나는 공연히 조이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날 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정비창을 떠났다.
다음날, (주)옥토끼가 발칵 뒤집혔다. 우주정 한 대가 스테이션에서 달로 돌아오는 도중 폭발해 산산조각이 났다. 조종사 없이 자동 귀환 중이어서 인명피해는 없었는데 달에서 힘깨나 쓴다는 법무법인 소유였다. 45P1956, 전날 우리 팀이 정비했던 우주정이었다. 원인과 관련해 아직 당국에서 확인한 게 없었다. 달 자치위원회 공식 조사도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덮어놓고 우리 팀을 족쳤다.
빌미가 된 건 또 나였다. 그날 정비가 끝난 뒤 ‘완결성 토큰’을 생성하고 저장하는 걸 까먹었던 거다. 그럴 수밖에, 종일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토큰'은 정비 마지막 단계에서, 문제가 없다는 걸 위조 불가능한 양자 암호 방식으로 저장해두는 보증서였다.
회사는 교활하고 잔인했다. 보증서가 없으니, 뒤집어씌워도 우리가 방어 못 할 거라고 계산한 것 같았다. 세 명 모두 해고하는 건 당연하고, 막대한 피해 금액을 우리더러 변상하게 할 태세였다. 로건이 나를 골방으로 불렀다. 나는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로건의 앞에 섰다.
“그 기종은 첫 출고 이래, 한 번도 폭발 사고가 난 적이 없어. 안전성만큼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종이라고 할 정도지. 내가 오랫동안 몰아봐서 잘 알아. 특히 엔진 계통이 아주 단순해서 정비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없어. 보증해. 너는 정신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로건은 약해지지 말고 끝까지 버티자고 말했다. 리더 다운, 믿음직하고 고마운 말이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 꿈을 내 의식이 지배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해괴한 꿈을 꾸었던 내 자신이 수치스럽고 원망스러웠다.
나는 골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로건이 왜 그러고 섰느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왜, 더 할 말 있어?”
나는 부정하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 저였다. 팔다리를 어색하게 버둥거리며 골방을 빠져나왔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다. 문 앞에서 넘어졌다. 하필 그 앞에, 조이가 있었다. 조이는 섯불리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눈을 마주친 뒤 얼른 고개를 숙였다. 조이의 눈빛엔 동정이 가득했다. 기껏 해야 인간을 모방한 로봇 주제에, 날 동정이라도 한다는 거야? 어쩌면 로봇 조이를 개발한 프로그래머는 '불행한 인간을 보면 얼마든지 공감해 주라'라고 몇 줄 코딩을 한 뒤에 스스로 뿌듯해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 프로그래머 녀석을 당장 붙잡아와 피를 철철 흘리도록 패주고 싶었다.
내가, 골방을 나오다가 머뭇거린 이유가 있었다. 사진 때문이었다. 로건의 골방,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죽은 여자 친구의 사진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던 물건이 어디로 간 걸까?
감사팀이 우리를 불렀다. 조사실은 정비창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옥토끼 사무동에 있었다. 방음이 되는 3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조사실 한쪽 벽면에는 제법 큼지막한 창이 있었다. 팀원들은 복도에 앉아 대기했다. 소리는 안 들려도 창을 통해 조사받는 모습을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피조사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노린 설계였다.
조이는, 조사 대상도 아닌데 억지를 부려 따라왔다. 로건과 레오 사이에 조이가 앉았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내 눈은 젖어있었다. 그렇게 셋이 앉아있는 모습에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