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의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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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이 마침내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개장 2년 9개월 만의 이를 달성하면서, 기존 신세계 대구의 가록을 2년 2개월이나 앞당겼다고 하는데요. 물론 역대 최단기간 '연매출 1조 원' 달성이라는 기록 자체도 대단하지만, 국내 백화점의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더현대 서울의 그간 행보는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사실 오픈 첫날 방문했던 더현대 서울은 강점만큼이나 약점도 뚜렷했던 점포였습니다. 교통은 분명 편리하지만 전혀 검증된 바 없던 여의도라는 입지 조건부터, 압도적인 공간에 비해 무언가 부실했던 입점 브랜드까지, 판교점과 같은 성공을 장담하기엔 살짝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더현대 서울은 이름처럼, 서울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명소로 거듭난 것은 물론, 빼어난 실적을 기록하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는데요. 오늘은 더현대 서울의 성공이 왜 유독 더 특별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국내 백화점들은 코로나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연매출 1조 원을 넘는 이른바 '백화점 1조 클럽'이 2배 이상 늘어났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백화점의 질주를 이끈 2가지 핵심 요인은 '명품'과 '몰링'이었습니다. 우선 명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는 바로 백화점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는데요. 특히 흔히 에루샤라 불리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과 같이, 오프라인에서만 구매 가능한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러한 트렌드를 주도하였습니다.
또한 동시에, 쇼핑뿐 아니라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거대한 복합 쇼핑몰을 뜻하는 몰링 전략 역시 백화점 흥행을 배가 시켰는데요. 더현대 서울 이전에 최단기간 1조 기록을 보유했던 신세계 대구가 대표적인 사례로, 기존의 쇼핑 공간에서 여가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또 한 번의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몰링 경험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갔던 핵심 콘텐츠가 바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었고요.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명품 브랜드 라인업도 빈약하고, 몰링 경험을 만들 엔터테인먼트 시설도 부재했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 5대 백화점 점포 매출 순위에서 더현대 서울은 12위를 차지했는데요. 1위부터 11위까지의 백화점은 모두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동시에, 최소한 에루샤 중 1개 이상의 브랜드가 입점한 점포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롯데 부산 본점을 제외하면, 2개 이상을 보유하였고, 에루샤가 모두 입점한 곳도 6곳에 달했습니다.
물론 더현대 서울도 이런 상황을 원했던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최상위 명품 브랜드들은 매장 총량제를 운영 중인데요. 대표적으로 에르메스는 2010년대 후반까지, 국내 매장을 딱 10개로 제한하였습니다. 이는 최근에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새로운 매장을 열면서 일부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매장 수는 11개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바로 옆 IFC몰의 존재 역시 더현대 서울에게는 큰 제약이었습니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가 이미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코스, 마시모두띠 등 주요 SPA 브랜드의 프리미엄 라인의 매장도 입점해 있었거든요. 이로 인해 더현대 서울의 몰링 경험 구축도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이러한 약점들을 신진 브랜드와 팝업스토어라는 콘텐츠의 힘으로 돌파해 냅니다. 지하 2층의 패션관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는 이를 상징하는 곳인데요. 취향이 파편화되는 트렌드에 맞춰,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팝업스토어를 메인으로 내세운 이곳은 금방 핫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기존의 몰링은 쇼핑 공간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덧붙인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를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킵니다. 이렇게 높았던 문턱을 낮추고, 즐길 무대를 마련해 주자, 그간 백화점을 외면해 왔던 젊은 고객이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고요.
물론 여기서 끝났다면, 더현대 서울의 성공은 반쪽짜리였을 겁니다. 더현대 서울은 전면에 내세운 팝업 뒤편에 신진 브랜드들을 유치하기 시작합니다. 인스타그램을 뒤져가며, 계속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설득하였는데요. 처음에는 올드한 이미지 때문에 입점을 꺼려하던 이들도, 팝업을 통해 더현대 서울의 이미지가 달라지자 수락하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실제로 오픈 첫해인 2021년만 해도 더현대 서울은 살 것이 마땅치 않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식품 매출 비중이 19.1%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2022년 16.5%, 그리고 올해에는 13.2%로 서서히 감소합니다. 대신에 영패션은 2021년 6.2% → 2022년 10.3% → 올해 13.9%로 늘어나며 식품 비중을 앞질렀다고 하고요. 이에 따라 객단가 역시 2021년 8만 7,854원에서 지난해 9만 3,400원, 올해 10만 1,904원까지 개선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체질 개선 노력 끝에 더현대 서울은 영화관 없이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명품 없이도 1조 매출을 올리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겁니다.
올해 들어 확실히 체감하는 건, 쇼핑 경험 자체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한쪽에는 올웨이즈나 다이소로 대표되는 초저가 쇼핑이 있다면, 다른 한쪽은 쇼핑 자체가 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더현대 서울이 존재합니다. 고객은 여기서 필요한 무언가를 사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누리기 위해 이곳을 찾게 되고요.
그런 면에서 과거와 달리, 이제 쇼핑 공간은 하나의 미디어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할 수 있고, 결국 콘텐츠가 가장 핵심적인 경쟁 요소로 떠오를 겁니다. 이에 따라 고유한 감성과 철학을 지닌 브랜드를 둘러싼 유통 채널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겁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이 효과를 톡톡히 본 영패션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싸움이 시작되고 있는데요. 더현대 서울을 필두로 백화점 3사가 모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물론, 온라인 최강자 무신사 역시 무신사 홍대를 비롯한 오프라인 거점을 선보이며 이에 맞서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현대 서울이 1조를 넘어, 2조 아니 그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 내려면, 연말 오픈을 앞둔 루이뷔통처럼 명품 라인업을 보강하는 동시에, 영패션 브랜드도 지속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과연 어떤 새로운 무기를 꺼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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