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기 02 : 스페인 마드리드
비행기 탑승까지 3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비행기를 바라봤다. 친구가 숙소에 대해 물었다.
"이지야, 우리 마드리드 숙소 예약했어?"
"맞다! 아직 안 했어. 지금 할게."
1년 전 스페인, 포르투갈을 한 달간 여행했었다. 그때 마드리드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내일 마드리드에 도착하는데 혹시 남자 2명 자리 있을까요?'
'오랜만이에요. 2자리 있어요. 내일 봐요!"
비행기 안은 고요했고 조명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배가 출출하여 승무원에게 컵라면을 요청했다. 솔솔 나기 시작한 라면의 향기에 승무원들이 부쩍 바빠졌다. 라면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라면을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면을 먹은 후 영화를 보거나 쿠바 여행 책을 읽다 잠에 들었다. 식사 준비로 분주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 보니 곧 마드리드에 도착할 듯했다. 스페인 현지 시각으로 저녁 시간이었다. 공항 열차를 타고 마드리드 시내로 향했다. 한 번 왔던 곳이어서 그런지 모든 게 익숙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숙소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솔 광장의 큰 트리와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은 작년에 왔을 때와 같았다. 솔 광장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1층에는 신발을 2개나 샀던 캠퍼 매장이 그대로 있었다. 매장 옆 큰 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탁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낡고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자 사장님이 문을 열어 주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1년 만에 무슨 일이에요?"
"쿠바 여행 가는 길에 들렀어요. 마드리드 경유여서 1박만 하고 내일 떠나요."
“정말요? 다시 와줘서 고마워요. 쿠바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가면 사진 꼭 보내주세요.”
한사코 숙박 요금을 거절하시는 사장님께 절반의 숙박비를 드리고 나서야 짐을 풀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은 굉장히 넓은 곳으로 솔 광장 근처로 많은 상가와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었다. 광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예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치 거미줄처럼 광장의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동생
1년 전 마드리드에서 10일 정도 머물렀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숙소 근처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 자주 방문했던 레스토랑이 있었다. 체인점으로 마드리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격이 꽤나 저렴하여 12유로에 스테이크, 와인 한 잔, 식전 빵, 샐러드, 감자튀김, 후식이 포함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친구는 만족스러워했다. 식사를 마치고 핸드폰에 와이파이를 연결하자 카톡이 울리기 시작했다.
"형, 뭐 해?"
"나 지금 쿠바 가려고 마드리드에 도착했어."
"형, 나도 마드리드야. 지금 어디에 있어?"
친동생은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미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때마침 동생이 마드리드 솔 광장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곧장 동생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동생은 마드리드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형, 여기 근처에 생선 튀김 맛집 있어. 내일 꼭 먹고 출발해."
일행과의 일정으로 동생과 짧은 인사를 마치고 친구와 숙소로 돌아왔다.
동생의 첫 해외여행은 나였다. 나는 3년간의 기간제 교사 생활을 끝으로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한 때였다. 그때에 맞춰 대학교를 졸업한 동생은 나처럼 집에서 빈둥대기 일쑤였다. 3년간 일을 하며 모은 돈이 꽤 있었기에 나는 동생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대만의 타이베이에 가고 싶었고 동생도 흔쾌히 응했다. 여행 비용은 내가 모두 대기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생과 일주일 동안 타이베이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둘째 날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린 나는 계속 여행을 할 기분이 아니었고, 처음 해외여행을 온 동생은 의욕적이었다.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던 탓에 동생에게 투덜투덜거렸고, 동생은 그런 나를 모두 받아줬다. 여행의 막바지 동생과 철판구이를 먹으며 고량주를 마셨다. 맛있는 안주 탓에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에도 고량주가 술술 넘어갔고 결국 동생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동생은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결국 스페인 마드리드 솔광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쿠바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의 사장님이 차려주시는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 동생이 추천해 준 레스토랑에 들릴 생각이었다. 레스토랑의 오픈시간까지 시간이 꽤 있어 스페인 광장의 세르반테스 기념비를 구경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마드리드 왕궁으로 향했다. 1년 전에 10일이나 머문 곳이어서 그런지 내가 마드리드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주었다. 동생이 추천해 준 레스토랑은 꽤 괜찮은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고 간단히 서서 먹을 수 있는 동그랗고 높은 테이블이 여기저기 있었다.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동그란 테이블 앞에 서서 생선 튀김과 맥주를 마셨다.
쿠바행 비행기에는 사람이 가득했지만 동양인은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 만에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설치된 계단을 내려와 공항으로 걸었다. 해가져서 어두워진 공항은 여느 공항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캐리어를 찾고 여행자 카드(비자)를 제출하여 입국 심사를 무사히 마쳤다. 공산주의 국가라고 특별한 것 없이 공항을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공항의 크기는 우리나라의 남부 터미널보다 작아 보였다. 공항 가운데 넓은 홀을 중심으로 양옆에 에스컬레이터가 한 개씩 있었고 건물은 3층 정도로 아담했다. 3층에 위치한 환전소에서 미리 준비한 달라를 쿠바 화폐인 '쿡 CUC'으로 환전했다. 공항 안에는 환전소가 2개뿐이었고 방금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줄을 서서 환전을 했다.
공항 앞은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붉은색과 노란색의 강렬한 페인트는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뽐내는 듯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택시? 25 쿡."
우린 뭔가 어색하고 무서운 기분에 가격을 흥정할 생각도 하지 않고 택시에 올랐다. 원래는 공항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택시를 함께 타고 정보를 얻어볼 생각이었으나 실패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대에 공항에는 한국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보통 쿠바로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쿠바로 오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스페인을 경유하여 쿠바에 오는 여행객은 우리를 말고 없었다.
해가 졌고 늦은 시간이었다. 택시를 탄 시간이 11시쯤이었다. 첫날 묵을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우리는 쿠바의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내 옆에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가 함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