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타워는 어떻게 WB의 상징이 되었나?

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쉬어가기)

넷플릭스가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순간부터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다. 딜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 눈에 띈 건 워터 타워였다. N자 단문자로 표현되는 넷플릭스와는 달리, WB를 상징하는 로고는 워터 타워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 딜을 보도하는 10개의 기사 중 최소 7~8개는 워터 타워 속의 WB 로고를 전면에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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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이게 워터 타워인지도 몰랐다. 사일로처럼 생긴 저장소라는 느낌은 왔지만, 그것이 물탱크일 줄이야. 여기서부터 궁금증이 시작되었다. 워터 타워가 왜 WB의 상징이 되었을까? 다른 어떤 미디어 사업자도 이런 적은 없다. 물론 웬만한 스튜디오는 워터 타워를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회사의 상징으로서 워터 타워를 내세우는 업체는, 그리고 시장이 그렇게 인지해 주는 것은 WB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스토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할리우드 중심지인 선셋 대로에 있었던 워너 브라더스가 현재의 버뱅크로 이동한 것은 1927년이다. 이 시기가 바로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가 개봉한 해다. 이제는 배우의 음성이 녹음되기 시작했다. 동시 녹음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기술적 한계와 그로 인한 살인적인 비용 구조였다. 워너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바이타폰(Vitaphone)' 시스템은 필름이 아닌 별도의 레코드판(Wax Disc)에 소리를 새기는 방식이었다. 촬영 현장에서는 카메라와 소리 기록 장치(왁스 디스크 커터)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기계적으로 동시에 돌아갔다.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필름은 촬영 후 가위로 잘라 붙이면 편집이 가능하지만, 소리가 기록된 왁스 원판은 물리적으로 자르거나 붙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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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소음이 들어가면 그냥 레코드판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다시 찍으면 되지 않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제작 환경을 들여다보고 비용을 계산해 보면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코드판 자체가 고가의 소모품이었다. 당시 녹음에 쓰던 '왁스 마스터'는 재사용이 불가능한 일회용이었다. 한 번 바늘이 지나가면 덮어쓸 수 없었기에, NG가 날 때마다 고가의 정밀 장비인 원판을 폐기처분해야 했다. 진짜 공포는 '연쇄적인 매몰 비용(Sunk Cost)'이었다. 당시 동시 녹음 현장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 촬영 종료 10초를 남기고 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린다면? 편집이 불가능했기에 앞서 촬영한 10분 분량의 필름과 레코드판을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고 연기해야 했다. 이는 수십 명의 인건비와 필름값, 그리고 시간을 허공에 날리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할리우드 시내에서는 소음 때문에 1번 성공하기 위해 10번을 다시 찍어야 했다면(비용 10배), 조용한 곳에서는 1번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경영진의 계산기는 명확했다. "레코드판을 계속 버리며 재촬영하는 비용"이 "스튜디오를 통째로 이사하는 비용"보다 훨씬 비쌌던 것이다. 이것이 WB가 소음이 가득한 선셋 대로를 탈출해, 절간처럼 조용했던 시골 농지 버뱅크로 도망쳐야만 했던 결정적인 경제적 이유였다.


하지만 버뱅크에는 '화재'에 대응시설이 없었다. 당시 사용하던 질산염 필름(Nitrate Film)은 오늘날의 안전 필름(Safety Film)과 달랐다. 성분 자체가 폭약인 면화약(Guncotton)과 유사했다. 더구나 타는 중에 산소를 발생시켜서 한번 불이 붙으면 물속에서도 타오를 정도로 강력했다.

https://youtu.be/gEz_a-Akufk?si=5yHPLbl5V15uxVue



선셋 대로라고 화재 위험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은 도심이라 시에서 운영하는 소방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반면 이사 온 버뱅크는 당시 허허벌판이었다. 불이 나도 달려올 소방차도, 충분한 수압의 상수도관도 없었다. 믿을 건 우리 자신 뿐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워터타워였다. 아파트 14층 높이에 해당하는 133피트 (40.5m) 높이, 그리고 2리터 생수 19만 병에 해당하는 10만 갤런(378.5톤)의 압도적 크기였다. 버뱅크 어느 지역에서도 눈에 띄는 바로 그 웅장함이 당시에는 있었다. 워터 타워는 안전을 상징하고, 유성영화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디즈니(1940년)와 지상파 사업자인 NBC(1952년)가 버뱅크에 들어올 때까지 거의 20여 년간 워터타워는 버뱅크와 WB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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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스튜디오가 확장되면서 타워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화재 방지 목적이었기에 부지 한복판에 위치했던 워터 타워지만, 스튜디오 확장에는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WB는 타워를 부수지 않고, 오히려 스튜디오의 가장 바깥쪽, 대로변(North Hollywood Way)으로 옮기는 대공사를 감행했다. 당시 기술로 물을 비우고 거대 구조물을 옮기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 이동은 결정적이었다. 스튜디오 깊숙한 곳에서 '기능'만 수행하던 타워가, 대중들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거대한 WB 로고를 달고 '간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Annotate-Image-01-07-2026_01_09_AM.png from Google Earth

물론 133피트의 거구는 당시 허허벌판이던 버뱅크 어디서나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스튜디오 내부 한복판에 있는 타워는 대중에게 그저 '지평선 너머 멀리 보이는 시설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매일 오가는 공공 도로 바로 옆에 서서 거대한 WB 로고를 내비치는 것은, 사유지의 은밀한 시설이 아닌 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오는 행위였다. 저 멀리 높이 있는 시설물이 아니라, 버뱅크의 랜드마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워터 타워는 WB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1940년 버뱅크로 이주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나 MGM 부지를 이어받은 소니 픽처스 역시 화재 방지를 위해 자신들만의 워터 타워를 가졌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안전 필름이 표준화되고 도시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세워진 NBC 같은 곳은 더 이상 워터 타워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즉, 워터 타워는 오직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 시대'의 개척자들만이 가진 훈장이었다. 그래서 1950년대가 지나 화재의 위험이 줄어들었을 때도 할리우드의 역사적 스튜디오들은 워터타워를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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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워터타워는 '유산(Heritage)'으로 승격된다. 타워는 물리적 기능을 넘어, 스튜디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지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뭐 여기까지 정리를 하고 보니 당초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졌다. 결국 194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스튜디오들은 다 워터타워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WB가 상징물로써 좋은 위치를 점하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WB의 독점물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다시 뒤져보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애니매니악스>(Animaniacs)다. 1993년, WB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을 잡고 시작한 프로젝트다. 당시 WB는 디즈니 르네상스에 밀려 애니메이션 사업이 고전하고 있었다. WB 대표 캐릭터였던 ‘루니 툰’의 광기 어린 에너지를 계승할 새로운 아이콘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필버그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과 손을 잡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애니매니악스였다.


과거와의 단절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거의 유산에 얽매이고 싶지도 않았다. 미국 영화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적자면서 새로운 시대의 적자이기도 해야 했다. 이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다 제작진이 찾은 설정이 바로 워터타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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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새로운 캐릭터들의 거주 공간으로 워터 타워를 선택했다. 타워에 "야코, 와코, 닷이라는 너무 미쳐서 1930년대에 봉인되었던 삼 남매가 살고 있다"는 엉뚱한 설정을 부여했다. 이 스토리텔링은 워터 타워의 위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애니매니악스>는 방영 기간 동안 8개의 데이타임 에미상을 휩쓸며 비평과 상업성 모두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어린이들은 슬랩스틱에 열광했고, 성인들은 날카로운 사회 풍자와 패러디에 매료되었다. 전 세대가 이 만화를 보며 "저 타워 안에는 미친 삼 남매가 살고 있다"는 로어(Lore)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로서 워터타워는 모든 이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현실의 워터 타워는 거대 기업 WB의 권위를 상징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속에서 캐릭터들은 매회 오프닝마다 타워의 문을 부수고 쏟아져 나온다. 이는 "거대 기업의 시스템조차 창의적인 에너지를 가둘 수 없다"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WB는 자신의 가장 권위 있는 상징을 스스로 희화화함으로써 브랜드를 대중의 눈높이로 끌어내렸다.


결과적으로 <애니매니악스>의 대성공은 워터 타워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2020년 훌루(Hulu)를 통해 리부트 될 정도로 여전한 이들의 인기는, 워터 타워를 단순한 시설물에서 WB의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으로 만들었다. 타워는 이제 팬들과 소통하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었다.


그렇게 워터 타워는 WB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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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버뱅크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는 워터 타워는 오늘 넷플릭스와 인수 합병을 논하는 상징물로써 자신이 이용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넷플릭스가 인수한 이후에 저 워터타워에는 어떤 로고가 쓰여질까? 인수전을 바라보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 넷플릭스 제국의 완성, 827억 달러는 비싸지 않다
2. 넷플릭스, 변심의 순간들
3. 넷플릭스는 WBD를 감당할 수 있을까? 딜 조건, 지급 방식, 시너지
4. 넷플릭스는 정말 극장 영화를 포기할 것인가?
(쉬어가기) 워터타워는 어떻게 WB의 상징이 되었나?

워너의 살아온 역사
6. Time-Warner의 화양연화 (~2000)
5. 슈퍼맨으로 흥하고, 아타리로 망하다 (~1989)
4. TV 시대 속 워너 브라더스: 길을 잃은 거인 (~1967)
3. WBD, 전쟁/반독점의 시대를 넘어서 (~1940s)
2. Dark한 캥스터 무비 (1927~1939)
1. Warner Bros. 의 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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