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나인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는데, 최근 내가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나에게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그 대답으로 내 이름 석 자를 말하는 것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세상에서 나는 점점 옅어져만 가고 있었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했다.
스스로에 대한 무감각일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공허함일지, 아니면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막막함일지, 아니면 5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취준한다고 퇴직금은 다 까먹고, 간신히 들어간 직장은 전보다 1500만원이 깎인 현실에 대한 후회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행히도 자아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일지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 년 전 만 하더라도, 이루어야 할 목표가 분명했고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고, 어떻게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노력 끝에 목표에 닿았지만, 요즘 마주한 감각은 불행과 더 닮아있었다.
위의 두 문단까지 쓰고, 나는 더 이상 내 불행에 대해 쓸 말이 없었다. 비참하기 짝이 없던 나의 불행은 고작 두 문단 정도로 정리되는 크기의 불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짧게 글이 끝나면 안 되니깐 어떻게든 불행을 짜내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 삶은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고 쪽팔리지도 않았다.
그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목적지와 지금 내가 서있는 곳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지금의 내 위치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나이 먹도록 무엇을 했냐'며, '좋아하는 거라면서,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냐'며, '조금 더 빨리 적성을 찾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며, 스스로를 다그치며 지금 당장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잔소리를 했던 거 아니었을까.
그런데 뭐 어쩔 수 없다. 늦었다고 안 하고, 못한다고 안 하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남을까? 그냥 하는 수밖에.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누군가는 낭만이고 꿈같은 소리라 여길지라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부족함 자체가 포기의 이유가 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