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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25. 2020

아내의 출산에 임하는 항해사 남편의 자세


대망의 출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름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였지만, 여전히 뭔가 준비가 덜 된 느낌이 들었다. 예정일이 돌아오도록 소식이 없기에 유도분만 예약을 잡았는데 딱 하루 전 진통이 걸렸다. 가진통인지 진짜 진통인지 알 길이 없는 초보엄마와 아빠는 이따금 오는 진통을 견디며 흔히들 말하는 출산 전 최후의 만찬을 먹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 커피도 원없이 마셨다. 남편은 한 술 더떠서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는지 정확하게 잰답시고 호들갑을 떨었다. 병원으로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게 진짜인가 가짜인가 계속 의심이 들었는데 병원에 가보니 이미 8센치가 열렸단다.


간호사들은 너무 늦게 왔다면서 초산이 맞냐고 어떻게 이렇게 참다가 왔냐고 했다. 무통을 맞고 촉진제를 맞고 어쩌고 병원에 간지 4시간 만에 떡두꺼비같은 아들이 뿅하고 나왔다. 힘을 주는 순간은 영원처럼 길었지만, 왈칵 쏟아지는 느낌은 순식간이었다. 잠깐 준비하는 줄 알고 분만실 밖으로 쫓겨났던 남편은 영문도 모른체 탯줄을 자르러 들어왔다. 가위를 든 손이 덜덜 떨리는거 내가 다 봤다. 분만이 쉬운지 알까봐 걱정이다. 가슴에 아기를 턱하고 얹어 주는데 눈물은 커녕 웃음이났다. 세상에 엄마가 되다니! 남들은 이럴때 눈물이 난다던데.  아기는 수산시장의 수족관에서 방금 건져올린 싱싱한 활어마냥  버둥버둥 팔딱거렸다. 육아책에서 엊그제 본 문장인데, 여자는 아기가 태어난 순간 평생 엄마로 산다고 한다. 나는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다. 



분만 후 3일간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다. 밍밍한 미역국이 양푼으로 끼니마다 나오는 미역국지옥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솔직히 남편은 아빠가 되었다는 현실이 아직은 피곤하고 버거운듯 보였다.  굳이 불편하게 병원에서 잘 필요 없이 가서 고양이들도 챙기고 편하게 자라고 집에 보냈다. 내가 생각보다 애도 쉽게 낳고 출산 직후에도 너무 괜찮아 보였나 남편은 큰 걱정없이 집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세상에, 다른 남편들은 자기 아내가 불면 날아갈까 부둥부둥 껴안고 부축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임신 기간은 물론이고 출산 직후에도 남편에게 대접받을 팔자는 아니었나 싶다. 물론 혼자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 틈틈이 집에서 짐도 챙겨다 주고 먹을 것도 사오고 들렀지만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을 보는 해기사들의 아내이자 예비 엄마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거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남편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낙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남편들은 어떻게 임산부를 케어해야하는지 감을 도통 못 잡는다. 출산 직전 발이 퉁퉁 부어있어도 부탁해야 간신히 다리나 잠깐 주물러주는 정도였다.


나 역시 남편의 케어를 받는게 어색하고 불편했던 것 같다. 그동안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신 기간 내내 무엇이든 혼자 해결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남편이 옆에 있어도 굳이 부탁하거나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선뜻 들지 않고 몸부터 나갔다. 나는 은연중에 남편이 알아서 '뭐든' 잘 하는 남편이기를 바랐나보다. 그러나 남편은 다정한 양의 탈을 쓴 상남자 중의 상남자. 남편은 물론 나름 최선을 다했다. 다만, 남편에게 원하는게 어떤 부분인지 그 당시에는 나도 남편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나 역시 '뭐든' 잘하는 아내는 아니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서로 적당히 이해하는 수 밖에. 


아내의 임신과 출산에 임하는 항해사, 해기사님들은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고 아내를 바라보며  아내가 원하고 필요한게 무엇인지 좀더 물어보고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다. 물론 그전에 아내가 먼저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출산할 때 조차 남편이 옆에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이따금씩 출산일에 못 맞추는 항해사 해기사님들 소식을 듣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럴일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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