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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의 독서나무(에필로그)

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2 - 앨빈의 독서나무

by TsomLEE 티솜리

아내(풍뎅이)는 아이(앨빈)의 독서에 관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블로그에 남겼다. 그 기록들을 이제는 아이가 대학생으로 성장한 시점에 하나씩 다시(또는 처음) 읽어보며 나의 생각을 덧붙여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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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 다른 시간 - 좌: 2014.4(초6), 중: 2015.5(중1), 우: 2016.10(중2)


청소년기 집의 책 보유량의 효과를 조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0년 전 통계자료이고,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변해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통계로 보인다. 책 보유량이 65권을 넘어설 때 성인 시절 문제 해결 능력에 미치는 효과가 평균적인 사람보다 나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결과다. 보유량이 350권 이상이 되면 그보다 더 많아도 긍정적인 효과가 더해지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책 보유량은 91권(OECD 평균은 115권)이니 조금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가구당_책_보유량(국가별_통계).jpg (출처: 인터넷 한겨레 신문)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 논쟁에서 나는 늘 중립이다. IQ로 대변되는 본성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어 있는 하나의 주요 요소이고(신경가소성 이론 등은 IQ도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가정환경으로 대변할 수 있는 양육은 부모의 노력으로 지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요소이다. 둘 모두 중요하다. 따라서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책을 가까이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했었다. 자주 인용하는 평화학자 정희진의 말, “오이는 피클이 될 수 있지만, 피클이 오이로 돌아갈 수 없고, 인간은 누구나 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에 동감한다(그래서 맥락은 다르지만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도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가치관도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가 시작이었으니까.


'츤도쿠'라는 일본어 조어가 있다.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쌓아 두고 결코 읽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읽다’란 뜻의 ‘도쿠(読)’와 ‘쌓다’란 의미의 ‘츠무(積む)’에서 파생된 ‘츤(積)’이 합쳐져 ‘읽을거리를 쌓아 둔다’는 의미라고 한다. 책을 정말 많이 읽는 분들이 농담으로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이라고들 한다.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둔 책 중에서 읽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서. 오늘 현재 우리 집 아들 방 책장을 찍어보았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물론 있다. 내 책을 일부러 아들 책장에 꽂아둔 것도 여러 권 보인다.

13.앨빈의 독서나무(에필로그)3.jpg 아들의 책장 (출처: 우리집 사진첩, 2025.2)


다섯 수레의 책(남아수독오거서)은 몇 권쯤 될까? 인간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 사실 권수보다는 독서 시간으로 따져야겠지만 학업이랑 업무와 관련된 것 제외하고,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1주에 10시간씩이면 대충 1권/1주는 가능하다. 1년이 52 주니, 50년 동안 책을 읽는다면 2,500권은 되겠다(수레 하나에 500권쯤 될까?) 나는 우리 집에 책이 만권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중에서 반쯤이라도, 오천 권 정도는 읽고 생을 끝내면 더 좋을 것이고.


우리 아이는 이공계특성화대학에 진학하였다. 학교 특수성으로 전공 학과를 2학년 때 정한다. 그때 학교에 신생학과가 만들어졌다. 책 100권 읽고 졸업하자는 말도 안 되는 커리큘럼을 내세웠다. 그런데 나는 혹했다. 아이에게 슬쩍슬쩍 권했다. 어차피 복수전공을 할 테니 제1 전공은 그것으로 시작하자고. 그런 아이가 2학년 첫 전공 1년을 끝내고 학교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하였다.



융합인재학부에서의 1년을 돌아보며


흔히 사람의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한다. 1년 전 학과 선택을 앞둔 나의 모습이 그랬다. 계획대로였다면 기계공학 주전공에 전지전자 복전을 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쯤 학부생 전체에게 메일 하나가 전송되었다. “융합인재학부, KAIST 속 작은 교육혁명!” 사실, 융합기초학부 덕분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융합인재학부는 나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왔다.


융합인재학부(이하 융인부)는 올해 새로이 출발한 신생 학과이다. 융합기초학부를 전신으로 가지고는 있지만, 융합기초학부의 실패를 바탕으로 학과 정책을 추춧돌부터 다시 쌓아 올려 완전히 다른 학과로 탈바꿈하였다. 융인부의 특징은 (1) 모든 학과의 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개인별 교육과정, (2) KAIST 교수들의 1:1 멘토링, (3) 타과 전공 학생들과 경쟁하더라도 주저하지 않도록 전 교과목 성적을 S/U로 부여, (4) 강독 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이다.


앞서 나열한 융인부의 특징들이 내가 진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이다. 우선 S/U 성적 부여가 주요했다. 나는 시험용 공부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실력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융인부가 매력적이었다. 동일선상으로 3년 동안 총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나의 실력을 성적이 아닌 포트폴리오로 보여줄 수 있게 된다. 강독 수업에서는 100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이 이룩해 온 지적 성취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지도교수님의 1:1 멘토링을 통해 나의 대학 생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1년간의 융인부 생활이 끝나간다. 지금 돌아보자면 융인부에서의 삶은 기대보다 만족스럽다. 초창기 멤버의 특성상 학과 정책이 하나씩 확정되고 있어서 불안전한 모습들도 있다. 그러나 융인부에서 소중한 경험들을 얻었다. 원하던 지도 교수님과 개별연구뿐만 아니라 학부생 참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 인턴은 프로젝트 수업에서 1학기 때 얻어간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원하였고 선발되었다. 올해 프로젝트 수업에서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고, 성적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그런지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2학년인데도 인턴쉽을 하고 있다. 물론 강독 수업에서 인간, 철학, 역사 등 인문학적 지식을 쌓아가는 재미도 얻어가고 있다.


“내가 지금 한 일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것들을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그 점들은 이미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우연히 읽게 된 융인부 설명회 메일. 우연히 읽게 되는 강독 수업의 책.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 우연히 새로 배우게 되는 개발 언어. 그 언어를 기반으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인턴쉽. 우연히 진학한 융인부에서 우연인지 필연이지 모르는 활동들을 했고,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확신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술(예술)을 완전히 익히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는 히포크라테스의 한탄이다. 아이가 어느새 군제대 복학생으로서 대학 4학년이 되었다. 이제 아들의 인생은 아들 것이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삶이 끝나는 그때까지 부모로서 아들의 삶을 응원할 것이다.


13.앨빈의 독서나무(에필로그)4.JPG 초4 겨울방학의 어느 날 집에서 (출처: 우리집 사진첩, 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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