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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책 읽어도 될까?(EP12)

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2 - 앨빈의 독서나무

by TsomLEE 티솜리

아이(앨빈)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입시생 모드로 진입해야 할 시기. 한가로이(!) 책을 읽어도 될까?

고1 겨울방학때 읽은 책 (출처: 우리집 사진첩, 2019.2)


1. 아내(풍뎅이)의 글 (2019년, 고2)


2019.03.10


1학년 2학기 생기부에 올렸던 책들을 겨울방학 동안 읽었다. 학원에서 돌아와서 자기 전 한 시간 정도씩. 엄마 욕심은 수학 한 문제 푸는 게 더 급한데 아이의 여유로움은 어디서 오는 건지. 겨울방학 동안 한 시간 동안 책을 본다고 하더니 거의 그렇게 했다.


입시가 끝나면 집에 있는 책들을 읽겠다는(지금 마음은 그렇겠지)


입시만 끝나면

실컷 자고,

실컷 웹툰 보고,

실컷 게임도 하고,

실컷 빈둥거리고,

실컷 놀고,

실컷 여행도 하고.


그나마 실컷 책도 보고 싶다고 하니 다행이다. 먼 훗 날 아이가 남편과 나를 기억할 때 ‘책을 읽게 해 주신 부모님’이라고는 말할 것 같기는 하다.


도서관에서 아이가 고른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파인만은 위트가 넘치는 사람. 아이가 웃으면서 본다. (출처: 아내의 블로그, 2019.2)


곧 고2 아이의 독서 (출처: 아내의 블로그, 2019.2)


*** 아내는 그날 블로그에 글을 하나 더 올린다.

한 학년 학생이 80명 밖에 안되다 보니 아이 반이 아니어도 이름과 얼굴은 거의 알게 된다. 1학년이 끝나고 같은 학년 아이들이 쓴 시를 묶은 시집과 서평집이 나왔다. 1-2학기 10월엔가는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쓴 글을 묶은 여행기가 있어서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뿐 아니라 80명 전체 아이의 글을 읽어 보았다. 글을 읽다 보면 전부는 아니지만 그 아이의 마음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위트가 넘치는 글을 쓴 아이도 있지만 마음이 좀 아파 보이는 아이도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야구 뉴스란 뉴스는 그렇게 보더니만 아이가 쓴 시 제목은 <최 정> (최정은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간판 타자이다) 그런데 아이가 쓴 시를 읽으며 왜 최정이 아니라 아들이 자꾸 떠 오르는 걸까. 혹시 본인을 빗댄 걸까?(6푼 7리는 1학년 성적을 은유한 것일지도)

최 정

- 이 O 현

타율 6푼 7리의 타자

한국시리즈 동안 친 안타는

단 1개뿐

게임의 흐름은 이미 넘어간 지 오래

1점 차로 뒤지는 상황에

전광판에 적혀있는 빨간색 표시등 2개

6푼 7리의 타자가 등장한다

모두가 기대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허공만 가르는 방망이

삼진으로 경기가 끝날 듯한 분위기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났다

따악!

타자가 방망이를 돌렸고

공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간다

2018년 11월 12일

SK는 V4를 달성하고

그 반전의 드라마는

6푼 7리 타자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 타자의 이름은 ‘최 정’

고1 아이의 시 (출처: 아내의 블로그, 2018)



2. 남편(티솜리)의 덧말(2025.02.03)


아이는 고1을 마치고 학교 석차 상위 20%에게 부여되는 조기졸업 자격을 얻었다. 고2가 여느 고3처럼 입시생 모드가 되어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이공계특성화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수학 성적이 가장 중요했다. 생기부에 독서기록도 적어야 하고, 대입원서용 자소서도 적어야 하지만 수학 성적이 그냥 왕이다. 독서는 언감생심이다. 곧 입시생이 되는 시기에 매일 한 시간씩은 책을 읽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갈등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또한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나 고군분투했었음에도 막상 대입 입시생이라는 환경 앞에서 양가감정을 떨치지 못한다. 나라고 그러지 않았겠는가?


아이가 고1 겨울방학 때 읽었다는 책 목록을 보니 내가 추천한 책이 대부분이다. 아내는 인문계 출신이라 아이의 과학٠수학분야 추천도서만큼은 내가 주도했었나 보다. 아이가 중3이었던 시절에도 생기부용 도서를 엄마가 많이 추천해 주었지만, 남아있는 한 장의 기록 사진을 보면 과학분야 서적은 아빠 추천도서가 많이 보인다.


중학생 때의 아이가 생기부에 올렸던 책 (출처: 우리집 사진첩, 2017.10)


이렇게 자란 아이가 군 복무도 마쳤다. 군대에서는 사단 독후감 대회에서 사단장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아이의 글은 국방일보에도 실렸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대중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 스마트폰 음성인식 AI 비서 서비스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끄는 유튜브가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공신경망, 기계학습, 딥러닝 등 용어에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용어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비전공자를 찾기 어렵고, 알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 용어들은 어떤 개념이고,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내가 앞서 한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수학적 수식과 코드 한 줄 없이 적절한 예시·비유를 통해 AI의 원리를 풀어나간다. 그렇다면 비전공자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대중들에게 AI 지식이 필요할까.


AI와 공존하는 시대에서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갖고 살아가려면 AI의 기초적인 지식을 알아야 한다. 기업들만 변화하는 것이 아닌, 개인도 AI를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영어를 하나의 도구로 배우는 것처럼, 기본적인 AI 지식도 필수가 될 것이다.


한때 우리 사회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원전 논의와 담론을 전문가에게만 의존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대중들이다. AI 영역도 마찬가지다. AI를 수학과 코딩으로 이뤄진 분야로 치부하면서 이를 전문가에게만 맡긴다면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우리, 즉 사용자의 의견은 소외된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AI의 알고리즘은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알고리즘은 객관적이라 생각하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지만, 알고리즘을 제작하는 사람의 편견과 관점이 스며든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운동가인 로런스 레시그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법이 사회를 규율하듯 사이버 세계를 소프트웨어 코드가 규율한다고 이야기한다. 불합리한 법을 제정하고 독재를 자행하는 경우 시위와 투쟁으로 이어지지만, AI의 알고리즘이 편향되고 왜곡된 결과를 내놓아도 그 구조가 드러나지 않기에 감시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불필요한 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여러 소셜미디어 회사의 입맛에 따른 검열과 편향은 문제가 됐다. AI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기에 비전공자도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Paul Bourget)의 소설 『정오의 악마』 에필로그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든 AI의 판단에 의존해 편향된 선택을 하게 된다면, 내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군대에서 독후감으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지만 역시 부모로서 아들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견한 마음이 앞서기는 했다. 그럼에도 부모 눈에는 성년이 된 아이도 여전히 부족하고 위태로워 보이고 뭔가 더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진다. 이 글을 읽었을 때 아이에게 물었다. ‘폴 부르제’의 소설을 읽어보았냐고? 아니란다. 어디서 본 내용이란다. 현학자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의 글을 인용할 때는 내가 그 내용을 깊게 이해하고 있을 때 인용하라고 조언을 주었다.


여하튼, 우리 아이가 최소한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했음에 고맙다.


군 전역 며칠 전 파주출판도시에서 (출처: 우리집 사진첩,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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