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2 - 앨빈의 독서나무
아이(앨빈)는 천하무적 중2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1. 아내(풍뎅이)의 글 (2016년, 중2)
2016.02.15
책을 읽는다는 건 가족들과의 또 다른 소통이 된다. 아이가 아이유의 ‘제제’라는 노래를 듣길래 집에 있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소개해 주었다. 책을 읽은 아이는 책에 소개되어 있는 2, 3편을 읽고 싶다고 한다. 도서관책에서 책을 빌려 왔다.
남편이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이라는 책을 읽으며 <로빈슨 크루소>의 다른 버전이라 알려 주니, 아이는 집에 있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스>를 읽었다.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의 청소년 버전도 있다 하여 도서관에서 빌린 <방드리디, 야생의 삶>도 읽었다.
2016.11.02
새로 구입한 책들. 알라딘에서 중고로 구입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마르셀 프루스트)>, <세상물정의 물리학(김범준)>, <뉴턴 하이라이트 신비한 수학의 세계 미분과 적분>.
오랜만에 구입. 뉴턴 하이라이트는 워낙 유명한 시리즈인지라 엄마의 욕심으로 구입했는데 아드님이 보실랑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이유 아닌 이유 일 수도. 매일 보는 야구 뉴스 기사 시간만 모아도 어마어마하겠지. 그 시간이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아이패드로 야구뉴스 보는 아드님의 모습에 엄마의 욕심은 스멀스멀 올라왔다가 내려간다.
2016 야구시즌이 끝나가는데 점잖게 아이한테 말해 볼까? 야구도 끝나가니 이제는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책을 드는 건 어떻겠뉘? 괜히 잘 못 말했다가는 된통 당할 수 있으니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연애시절에도 밀당 한 번 해 보지 못했던 성질인데… 곰 보다 여우가 낫다는 말은 아이에게도 통하는 듯하다.
2017.01.25
이번 겨울엔 댄 브라운 소설들과 영화로 방학을 시작했다. <다빈치 코드>는 2학년 여름에 읽었었나? 가물가물하다.
정말 오랜만에 앨빈은 독서 중이다. 방학이라고 읽을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 오전 잠깐, 주말에 조금 시간이 나는 정도이다. 경시공부와 학교 수행, 내신으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게 정확하다. 짬짬이 틈나는 시간에 책을 읽는 독서광이라면 모를까.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쉬는 시간인 화장실, 소파에서는 야구뉴스를 봐야 하고 게임을 하지 않는 게임(?)도 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인정하는 게 참으로 쉽지 않았다.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에 옛날 어른들 말씀대로 천불?이 왔다 갔다. 참지 못하고 말하는 나의 말에 아이는 그 틈조차 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짜증이 났을 것이다.
자주 나를 반성한다. 남편 말 대로 나는 우리 아이가 공부만 하는 기계를 원하는 것일까? 놀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놀 것 다 놀고 공부는 언제 하냐 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대하면 답이 없는 것 같다. 아이는 내 말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서로의 감정만 상할 뿐이다.
방학과 더불어 중고서점에서 댄 브라운 책을 구입했다. 아이가 너무나도 즐겁게 읽었다. <로스트 심벌>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나온 <인페르노> 영화도 함께 보았다. 아이 덕분에 나도 <다빈치 코드>에 이어 <천사와 악마>까지 읽었다.
종교와 과학이라는 두 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과 역사적 장소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설가는 천재이지 않을까. 도스토 예프스키나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무엇보다도 해박한 지식에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댄 브라운 책들에 나오는 피렌체의 성당들을 가 보고 싶다. 내가 랭던 교수인 것처럼
2. 남편(티솜리)의 덧말(2025.01.27)
기숙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은 주말이면 집에 돌아왔었다. 내가 늘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만 거실에서 여전히 깨어 있는 아이와 엄마의 말소리는 잠결에도 잘 들렸다. 아이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엄마이고, 아들은 고1 남자애 같지 않게 얌전하지만, 두 사람은 투닥투닥 말다툼의 연속이었다. 보호는 받고 싶고 고맙게 생각하지만 간섭은 받고 싶지 않은 아들과, 사랑은 구속이 아님을 알지만 관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 사이에 목소리가 커지곤 했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모른 척 두었다. 엄마와 아들은 서로 사랑하니까. 그 사랑을 서로 믿으니까. 잘 타협해 나갈 것이다. 엄마도 (일부는) 옳고 아들도 (일부는) 옳다. 나 또한 일부만 옳다. 우리는 모두 누구나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중학생 때의 아이와 엄마 사이에도 수많은 다툼이 있었다(그 사실을 나는 잘 몰랐다). 어린 시절의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곧잘 방종으로 귀결된다. 무한한 자유를 주고 싶지만, 미성년의 아이는 자유를 스스로 조정할 힘이 약하다. 어디까지가 적절한 통제일까? 아내는 아이의 군주가 아니라 매니저 혹은 멘토이고자 노력했다. 아내는 아이의 성장 과장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아내는 말한다. 곰보다는 여우가 낫다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진득한 기다림과 인내는 곰이 어울리겠지만, 아이의 매니저로서, 멘토로서는 분명 여우가 나을 것이다. 곰과 여우 사이에서 그렇게 아내는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갔었나 보다.
소아 정신과 의사인 서천석은 말했다.
“아이를 키울 때 나쁜 쪽을 지적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부모는 흥분하기 쉽고 아이는 결사적으로 방어합니다. 결국 싸움이 나죠. 나쁜 건 그대로 두고 아이의 좋은 행동을 늘리는 쪽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좋은 행동이 많아지면 나쁜 행동은 줄어드니까요.” – 서천석, 2013.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