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젖었다

자연을 배우다 2 - 보물섬 증도에서

by 툰자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평균 12시간 일한다. 일요일도 대형 마트 휴무일인 둘째, 넷째 주를 제외하고 4~5시간 일해야 한다. 1년 365일 중 340일 정도 출근한다. 2019년 근로기준법은 주 5일 총 40시간, 연장 근무를 포함하여 총 5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자발적으로 5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인건비라도 줄여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는 남편은 아침밥도 없이 출근해서 점심시간 전까지는 분 단위로 쪼개가며 일을 한다. 그렇게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물론 그 사이에 몇 년은 일을 분담할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오히려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생겨 자신의 노동 시간을 늘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가족인 내가 수시로 그를 돕기 위해 출동한다.

남편은 짧은 여름휴가조차 없다.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생일이 함께 들어 있는 유월에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다. 남편 생일은 6월 11일, 내 생일은 22일이다. 22일 토요일에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겨우 1박 2일 여행이지만 여행 당일 그의 노동 강도는 2배로 높아진다. 가능한 빨리 떠나기 위해 아침, 점심 두 끼를 거르고 뛰어다녔다.

토요일 오후 2시, 우리는 전남 신안군 증도를 향해 출발했다. 쫄쫄 굶어가며 일하고 내 생일이라고 운전기사까지 자처하면서도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고창 고인돌 휴게소에 들러 후루룩 우동 한 그릇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와도 좋다. 바닷가에서 비 오는 거 보면 운치 있고 좋잖아.”

“비 쏟아지면 우리 비 맞고 다니자.”

무안을 지나 다리로 연결된 신안군의 섬에 들어서자 속도를 줄여야 했다. 도로도 좁아졌지만 자줏빛으로 물든 습지가 아름다워 자꾸만 시선이 창밖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증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몇 번이나 차를 세웠다. 증도 대교를 건너 증도에 들어서자 광활한 습지와 드넓은 소금밭이 나왔다.

소금물을 마시고 자라는 함초는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에 익어 붉어졌다. 붉은 정원 건너에는 하얀 소금밭이 있다. 바람과 태양이 천천히 피워내고, 염전 노동자들이 수북하게 쌓아 놓은 소금꽃에 눈이 부셨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네모난 소금밭과 부드러운 곡선의 자연 습지, 푸른 하늘에 넋을 잃었다. 우리는 시간을 잊었다.

노안이 와서 책을 가까이 보아도 글씨를 읽기 힘든데, 멀리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이 들면서 원시가 되는 것은 멀리 넓게 보라는 뜻인가 보다. 만나자마자 슬로 시티, 증도는 우리에게 천천히 가라고 했다. 눈앞에 있는 것만 쫓지 말고 멀리 보라고 했다.

느린 섬, 증도의 또 다른 별명은 보물섬이다. 1975년 증도의 방축리에서 700여 년 전 바닷속에 가라앉았던 중국 무역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배는 도자기를 비롯한 귀중한 유물들이 많은 보물선이었다. 바닷속에 묻혀 있던 보물선 때문에 얻은 별명이지만 느리게 둘러본 증도는 진짜 보물섬이었다.

살아있는 갯벌을 차지한 수천, 수만 마리의 칠게, 농게, 짱뚱어도 보물이고, 작은 금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소금도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하얀 보석이다. 드넓은 습지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칠면초, 함초 같은 염생 식물도, 우전 해수욕장의 해송 숲과 긴 모래 해변도 증도의 보물이다.




느리게 섬을 둘러보느라 늦은 저녁에 펜션에 도착했다. 얼렁뚱땅 남자 셋이 차린 소박한 생일상을 받았다. 둘째는 복숭아 주스로, 첫째와 우리 부부는 호가든으로 천천히 목부터 적셨다. 비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촉촉하게 젖었다.

늘 서두르는 일상처럼 여행을 했다면 우리는 보물섬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증도라는 보물섬은 늘 거기 있지만 보물 찾기에 성공할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보물을 찾으려면 서두르지도 말고 동행자에게 재촉하지도 말자.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래오래 보았더니 모두 보물로 보이더라. 내 곁에 있는 세 사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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