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한번쯤 고의로 피워보면 어떨까

게으름 예찬까진 아니지만서도..

by 트윈블루

당신은 게으릅니까? 당신은 게을러터졌나요?


참 무례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곤...

게으름을 좀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게으름의 결과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꼴은 딱 질색인 나로서는

가급적 게으름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요령 부를 수 있을 정도로만 피워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지만,

게으름을 피우려면 피워대는 대상은 한정 지어져 있는 편이다.

내 경우 보통 가장 친한 나의 친구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쉽게 피울 수 있는 게으름은

약속 시간에 늦게 나가는 것이다.

윽. 워딩으로 적는 것만으로

마치 자동 방어기제처럼 내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죄책감이 물밀듯 몰려든다.


내 친구 무리는 '타이거'라는 그럴싸한 그룹으로 학교에서 불렸는데

타이거라고 해서 뭔가 거창하거나 대단한 무언가를 해낼 것 같은

그룹이기 때문에 붙여진 멋진 네이밍은 사실 아니었고


고교 시절 유행했던 만화인 괴짜 가족에 나오는 캐릭터 중

허접하게 몰려다니는 오합지졸 같은, 녀석들이 있었고 그들을 타이거 군단이라 불렀는데

한 친구 녀석이 우리들을 보면서 조롱 섞인 어조로 불렀었는데

그게 굳어져 타이거라고 불렸던 것 같다.

그리곤 우리도 나름대로 꽤 괜찮은 정체성이라 생각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아무튼 영양가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낄낄대며

재미를 찾아다니는 그런,

천상 고등학생스러운 그런 무리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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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리에게는 공식적으로 "타이거 타임"이란 것이 존재했는데

예를 들면 11시에 모이기로 약속을 잡으면

아무도 11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11시쯤 되면 눈치 게임이 시작되지.


보통은 문자로 서로 낚시를 한다.

나는 거의 다 왔는데 다들 어디냐라고 물으면

녀석들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왜 안 오냐, 벌써 음식 시켰다 등등

여러 가지 떡밥들을 던지지만

실제로 약속 장소에 내가 제일 먼저( 물론 11시는 훌쩍 넘었지만) 도착하면

아무도 11시에 도착한 친구들이 없었으며


평균적으로 1시간 정도 후인 12시가 되어서야

느긋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먼저 떡밥으로 던진 말을 믿은

순진해 빠진 녀석이 불평불만을 말해 봤자

그런 것들을 받아줄 나약한 무리들이 아니었다.


아무튼 다들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이런 게으름을 피웠고

사회생활 혹은 이해관계로 엮여 있는 친구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뭐랄까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녀석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은 다들 사회생활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타이거 타임은 공식적으로 없어진 지 꽤 오래되었다.


아직도 일부 멤버는

태생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제시간에 오는 편이다.

그래도 가끔은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정 딜레이 정도는 어느 정도 사회 통념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는

용인되는 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화장실 타임이라든지

씻는 시간이라든지 뭐 기타 등등 그런 것들 말이다.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는

그룹에 속해 있다는 건

생각해 보면

꽤나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흘러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책임져야 할 대상과 권한이 늘어가고

사회생활의 주체가 되어 가면서

이제는 주변에서는 게으름을 피우려야 피울 수 없는,

그런 코너로 내몰린 삶을 살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들 선비처럼 허허 그럴 수도 있지라고

호락호락하게 넘어간다는 것은 아니다.

늦은 녀석은 게으름의 대가로

쌍욕을 먹는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그렇게 불쾌하지 않은 것은,


요즘같이 젠틀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졌으며,

사회적 통념과 기준이 높아진 시대 속에서

무려 쌍욕을 나한테 해줄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립다고 말하면 약간 변태적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게 사실인걸.


어찌 보면 게으름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내 게으름을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 혹은 상황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이 아닐는지.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마음껏 면책특권처럼 게으름을 피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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