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서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내가 TV를 보는 이유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고 공통대화걸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서 TV를 보게 된다면 남편과 늘 함께 예능, 드라마, 영화를 보는 편이다. 오래 전 남편과 함께 실화를 바탕으로 한 22 July라는 영화를 보았다. 실화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총격 테러사건으로 청소년들과 지도교사 80여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부모로서 상담가로 참 많은 생각해준 영화이다.
<영화 결말 스포일러 있습니다>
나치를 지지하는 백인 우월주의자였던 범인은 이 테러를 오래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노르웨이나 유럽의 국가들이 이민과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다민족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다민족 문화로 바뀌는 국가를 반대했던 범인은 노동당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리더십 캠프에서 자라나는 미래의 리더들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신념적 전쟁이라 선포한다.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 폭탄을 터트리고 모든 사람들이 폭탄테러 정신이 없는 그때에 경찰복을 입고 여름 청소년 캠프가 열리는 섬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 경찰복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도망가지 못하고 그냥 죽어나가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 700여 명의 아이들이 참가했던 캠프에서 69명의 학생이 사망하고 많은 아이들이 치명적인 총상을 입게 된다.
영화를 도입부에 범인이 무차별적으로 아이들을 공격하고 바로 경찰에 잡히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 정신 나간 백인 우월주의자의 재판 과정과 그 총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학생의 이야기가 영화 중반부 이후로 넘어간다. 미치광이 사이코에게 5발의 총을 맞은 주인공은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한쪽 눈도 잃고, 손가락도 잃고, 다리도 불구가 되고 머리엔 총탄 파편을 남겨둔 채 말이다. 여름에 병원에 들어간 주인공은 온 세상이 설원으로 바뀐 한겨울에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장애인이 되었고, 총격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머리에 남아 있는 총탄의 잔해가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공포에 살아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반전이나 통쾌한 복수극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다큐를 보는 듯한 현실감이 잊히지 않았다.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이 가족은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은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다. 그런 가족들의 심리가 잘 담겨있다. 그리고 그건 너무 당연했다.갑자기 평생을 장애인으로 테러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님과 또 같은 장소에서 살아남은 동생은 엄청난 부담감과 죄책감 그리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트라우마는 절대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변으로 2차 3차 영향을 준다. 그래서 사실 범인은 아이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가족들도 함께 죽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엄마라서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살면서 이런 일을 상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만났을 때 과연 나라면 어떻게 할까? 부모라서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장면에 주인공이 법정에서 테러사건의 증언을 하면서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 나는 눈도 잃었고 손도 다리도 잃었다. 절대로 예전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살기로 선택했다."
어쩌면 총격 테러는 주인공이 저지른 일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그는 순전히 억세게 운이 나빴던 사람이다. 때론 운명은 우리를 그리로 끌고 갈 때가 있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야 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게 만든 선택은 그의 분명히 그를 절망에서 구원해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 주인공은 이후에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은 정치계에 입문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불행과 불운을 탓하고 원망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그 울분을 타인에게 전가시켜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인간의 인생이란게 절대로 공평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도 다른 자연재해나 매일같이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사고도 원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개인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억울하게 당한 일을 원망하고 탓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한줄기 빛을 바라보고 더 좋은 선택을 할 것인지는 순전히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루하루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인한 절망보다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총격사고로 사망한 피해자들 입니다. 이렇게라도 이들을 기억해 주는 것이 남은 자의 도리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