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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Sep 02. 2024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선 자신만의 안전지대가 있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어딜 가나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찾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신체적 폭력과 감정적 폭력이 난무했다.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었지만, 마치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홀로 있는 느낌이었다. 혼자 나를 지켜야 했고 나를 보호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살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위험할 것 같은 것이나 실패할 것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심리적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랬던 나는 미국에 오고 결혼을 하고 나서 '편안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신앙과 남편이라는 거대한 안전지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고 나서도 아버지와의 크고 작은 갈등은 있었고,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인한 나의 열등감, 자격지심, 낮은 자존감 같은 것들이 육아나 관계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회에 가서 울부짖었고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묵묵히 안아주고받아주고 사랑해 주었다.


 부모님의 양육태도는 이 세상은 의지할 곳 없는 살얼음판 같은 세상이라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실패도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셨지만, 신앙과 남편은 나에게 기대어도 되고, 나를 의지해도 되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보여주었다.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것이 늘 긴장하고 불안하고 전전긍긍하며 옷깃을 죽을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나의 손을 풀게 해 주었다. 세상은 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춥지 않다고 그리고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도망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하게 했다. 그것이 닥치지도 않은 나의 실패나 미래를 염려하던 나의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해 주었다.  




불안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편하게 쉬고 에너지를 얹을 수 있는 안전한 사람, 장소, 혹은 활동이 꼭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지치기도 하고 힘들일을 만날 수 있지만 불안한 사람들은 위험이나 불안에 대한 센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무척 예민하다. 한마디로 늘 자신의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편이다. 그래야 자신을 즉각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마디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이완시키질 못한다. 그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무척 큰 편이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쓰다 보면 스트레스에 더 예민해지고 감정조절도 힘들어지고 후엔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곳에서 충분히 릴랙스 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가 있다.


거기다 불안이 높으면 개인의 성장이나 성숙이 어렵다. 왜냐하면 성장이나 성숙은 반드시 어려운 도전이나 새로운 환경이나 고난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도전과 탐색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실패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불안이 높은 사람은 그런 자신의 실패나 실수를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실패나 실수를 용납해 주고 다시 일어나도록 격려받을 수 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와 애착이 건강하게 형성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탐색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뒤에 부모가 든든히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지 나를 보호해 주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자유롭게 탐색한다.


이런 이유로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만의 안전지대(Safe place)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활동일 수도 있고 심지어 신앙이 될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 가장 좋고,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가 되어주면 사실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자신의 힘듦을 말하지 못하고 배우자에게 하소연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초월적인 신이라도 붙잡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할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다.


안전지대는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마음껏 하소연할 수 있고, 마음껏 울 수 있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충분히 마음속의 걱정이나 불안,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충분히 응원받고 격려받을 수 있으면 사람은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지대는 편안한 그곳에 영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 쉬어가고 힘을 낼 수 있는 곳인 것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술이나 게임, 폭식등을 자신의 안전지대로 삼는다. 어쨌든 그것이 자신의 걱정이나 괴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행위는 잠깐의 진통제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해결되지 않았거니, 인정하지 문제를 더욱더 크게 만들다 더 큰 불안과 걱정을 양상 시키기도 한다. 정말 좋은 안전지대는 상처를 들여다보고 소독하고 꿰매는 진짜 치료가 되게 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문제를 직면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게 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해야 할 것은 하게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불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증폭되는 많은 이유가 자신만의 안전지대가 없는 경우가 무척 많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나약함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울지 못하고 참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억누른 내면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가고 급기야 자신의 마음과 신체가 따로 반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일상은 쉽게 무너지게 되어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곳 사람이나, 장소,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가면을 내려놓고 온전히 솔직히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아무리 찾아도 없다면 심리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라도 만나야 한다. 그들은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존재적 자신의 수용과 인정이 일어나고 진짜 쉼을 얻을 수 있다면 불안을 다스리기가 훨씬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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