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두근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연애 소설은 잘 안 읽게 된다. 올해 읽은 책 50권 중에 연애 소설은 한 권도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노른자까지 빠짝 익은 계란 프라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것은 너무... 보들보들하다고나 할까.
여름 끝물에 도서관이 장기 휴관에 들어가면서 책을 스무 권 넘게 빌려왔다. 들어본 제목, 익숙한 작가 이름이 눈에 띄는 대로 집어와 거실 한쪽에 수북이 쌓았다. 이제 절반 정도 읽었는데 그중 연애 소설이 한 권 끼어있었다(는 걸 책을 펼쳐보고 알았다). 몇 년 만에 보들보들의 세계로.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던 십몇 년 전에는 '썸'이라는 말이 없었다. 개념을 규정하는 표현이 없으면 그것을 인지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썸'을 통해 알았다. 소개팅하고 사귀기까지 한 달 사이에 나도 남편이랑 '썸'을 탔을 텐데 그땐 그게 썸인지 몰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묘한 분위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2년 차 유부녀는 여러 차례 입술을 깨물었다. 꺅! 이게! 썸이구나! 꺍! 너무 재밌다!
그렇게 나의 연애 타령이 시작됐다.
"여보, 나 연애하고 싶어."
"???????????"
퇴근하고 집에 가면 그날 읽은 부분 중 제일 두근두근한 내용을 아무렇게나 떠들었다.
"오늘은 뽀뽀했어! 산에서! 꺍!"
"...... 그랬어?"
"연애할래. 연애시켜줘."
"......"
이 재밌는 걸 나만 알 수 없는데! 나 혼자 연애할 수도 없는데! 급기야 나는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잠들기 전에 한 시간씩 남편과 (강제) 시청하기 시작했다.
거실에 이불을 여러 겹으로 깔고 누워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을 넋 놓고 구경했다.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남편이 내 다리 위에 자기 다리를 턱 올려놓았다.
"뭐야! 이건 연애가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 아니야?"
두근두근하는 장면이 나오면 괜히 남편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눈치 빠른 남편은 얼른 쪽.
"헤헤 이건 연애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이구"
책이 이제 몇 장 안 남았는데 어떻게 끝나려나, 보다 오늘은 드라마 주인공들이 뽀뽀할지가 더 궁금한 나는야 유부녀.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면 연애 소설도 간간이 찾아 읽고 남편이랑 연애도 하는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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