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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8. 2021

너하고 미친듯의 떨어지고 싶다.

스스로의 힘을 믿고 나아가는 아이들


떨어지고 싶어서 미쳤던 5,6살 때 쯤

유치원은 왜 안가냐

왜 집에는 혼자 못있냐

왜 혼자 집에 올라가질 못하냐

내가 잘못키웠나

아님 내가 너무 끼고 돌았나

내가 내 두려움에 너무 아이를 가둬뒀나 


아이의 발달단계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직 다른 아이들에게 시선이 꽂혀

비슷한 또래에 자기 아들은 잠깐 정도는 

혼자 있었다는 말만 들어도

눈이 뒤집어지던 그 때. 

잠깐도 떨어지지 않는 내 아이가 병신같다며

나도 숨좀 쉬고 살자고 원망 했을 때가 있었어요. 


둘을 캐어해야하니 

움직이는 것도 

준비하는 것까지 4배. 

양손에 둘을 다 끼고 나가야하니

버거울때가 참... 많았어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먼저 들어가고 싶어하는 첫째,

집이 바로 코앞이니

들어가고 싶으면 먼저 들어가라고 해도 요지부동,

지하주차장에 잠깐 내려갔다 온다는데도

가기는 싫고 혼자는 있기 두려우니 요지부동.

그 때가 6살이였어요.


왜 누구는 혼자 있다는데,

내가 너무 끼고돌았다며 스스로 자책하며

다른 아이를 데리고와 내 아이를 비교질하며

내 힘듦에 잠깐 떨어져있으라고

멀쩡한 내 아이를 바보 만들곤 했어요.


그런 아이가 7살이 된 3월.

아빠와 동생이 나가있는 놀이터를 

혼자 엘리베이터 타고 쌩하니 나가네요.

아빠와 동생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안정감, 안전함을 느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고 나가네요.


엄마 같이 하자고,

엄마 같이 가자고,

그렇게 내 옷자락을 놓지않고 버티던 큰아들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씁씁하네요.


내 아이가 옆에 딱 붙어있을땐 몰라요.

언제나 그래요. 

곁에 있을땐 모르다가 떠나가면 그때나 깨달아요. 

내 아이가 얼마나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는지를요.

사실은 내가 아이에게 위로받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뒤집기 할때도 걸음마 뗄 때도

언제나 남의 아이에게 시선이 고정되어있었던 나는

하루하루 늦는게 불안했어요.

내가 모르고 지나가는게 있을까봐,

내가 아이에게 잘못해주고 있을까봐..

그래서 지금도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의 발단단계에 내 아이를 끼워맞추곤 해요.


내가 아닌 남으로 살아야 안전했던 엄마는

내 아이 역시 남의 아이와 동일시시켜 바라봐요.

그러나 나와 내 아이를 믿지 못하는 엄마의 최후는

결국 나와 내 아이를 둘다 잃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 믿어야해요.  

내 아이는 내 아이의 속도대로 가고 있음을, 

내 아이눈 내 아이만의 길이 있음을 말이예요.


언젠가 아이에게 말한적이 있어요.

"야~ 너 정말 잘컸다. 누가 널 키웠어?"

제가 이렇게 물으면 아들은 언제나 정해진 답처럼 

"엄마 아들이라서"라고 세뇌당한 듯 말해요.


문득 오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잘 자라준거구나.

내가 아닌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거구나!

아이는 내가 키워서 잘 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빛을 발산하고 갈 뿐이였어요.

다만, 내 존재가 없다고 믿는 내가  

아이를 통해 나의 존재를 증명받고 싶었을 뿐이였어요.


아이를 잘 키워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주체가 나임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은 내 아이가 육아의 주체임을.

그저 나는 아이를 믿고 따라가면 되는것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인정받고 싶은 엄마,

안그런 사람 있어요? 

그맘까지 인정하며!!

언제나 시선은 내 아이에게 고정!!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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