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워 나를 부여잡고 울었던 시간들
아이들과 밤에 외출하고
늦은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차에서 재워본다.
골아떨어진 첫째와 달리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말똥 말똥한 둘째.
둘째를 재우려 내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한다.
아..
둘째 갓난쟁이 때가 생각난다.
ㅜㅜ
둘이 버거워 어떻게든 차에서 재워보려
우는 아이를 데리고
30분 넘게 차 안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러고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음이
비참하고 서러워
노래를 들으며 엉엉 울며 돌아왔던
그 날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 시간은
내게 참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였다.
둘을 동시에 캐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잠'이라는 것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내게 아이를 재운다는 것은
우습게도 유능함의 지표였다.
아이를 편하게 재우지 못하는 내가,
그리고
편하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나 미웠다.
그냥 좀 자지..
제발 좀 자지...
왜 안자서 나를 이렇게 나쁜 엄마를 만들어..
자는 시간만 되면
아이를 원망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기 싫은 아이의 욕구' 따위는 보이지가 않았다.
'왜 안잘까?'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늘 아이가 '왜 안자는지' 궁금했다.
그저 나를 이 늦은시간까지
힘들게 하는 아이가
미웠고 미웠고 미웠을 뿐이다.
오늘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를 안고 재우는데
아이의 온기가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온기가 따뜻하게 느껴질수록
그 때의 차가웠던 내가
더 또렷이 느껴진다.
아이의 마음과 눈빛이 들어오지 않았던 그 때.
오로지 아이를 재우고
이 고통스러운 육아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그 때.
둘을 케어 하지 못하는 그 무능감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그 때.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먹는거 자는거 입히는거 책 읽는거
심지어 젖먹이는거 시간조차
아이들를 통제했던 그 때.
그 무엇으로라도
나를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그렇게 힘주고 살았던 내가 느껴진다.
돌도 안된 갓난아기를 안고
차를 타고 돌고 돌고 돌았던 그 때,
나 참 많이 불안했구나..
나 참 많이 힘들었구나..
나 참 많이 두려웠구나..
내 불안이 너무 커서
아이를 제대로 바라 볼 수 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가야 미안해.
그 때 우는 너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안잔다고 원망만 해서 미안해.
둘째가 5살이 된 이제서야
아이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내려진다.
'엄마는 너를 재우고 싶지만,
니가 자지 않는다면 그냥 집에 가서 자자'라는
이 라이트한 감정이
이제서야 든다.
'잠'을 유능의 지표로 삼으며
'아이를 꼭 재우고야 말겠어'라고
의지를 불태우던
그 때 그 시간들이 이제서야 흘러 지나간다.
재우기 위해 내달렸던 과거의 시간.
그 때 아이를 울렸던
그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이였음을 안다.
내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그 때의 그 시간들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