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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21. 2021

내 감정에 토달지 않는 것

누군가 나를 이끌어 주기 원하는 마음


예전에 내가 따랐던 사람들은 보통 자기 확신에 가득한 사람들이였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기에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확실하다 여기며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믿음이 갔고, 심지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맡기고 싶었다.

나를

나의 인생을

책임

져 줄 것 만 같아서.


그런데 그런 사람들 옆에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여지 없이 더 틀린 사람이 되어 버렸다. 부족한 사람, 못난 사람. 내 감정과 다르게 느껴지는 감정들, 자꾸만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도 이도저도 못하면서 옆에서 머물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나에게서 더 멀어져갔다.


돌이켜 보면 그 사람이 나를 틀린사람, 못난사람,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였다. 이미 내가 나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고, 그 사람은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춰졌을 뿐이였다.


믿었던 사람, 의지했던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충분히 경험하고 난 후에, 안개가 걷히고, 객관화되는 시간을 거치면서, 지워졌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를 믿지 못해 철저히 타인의 말에, 타인의 겉모습에 휘둘렸던 나에게 모든 중심점은 '타인'이였음을. 미움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내가 불편하다 느끼는 감정은 철저히 외면한채 타인의 맘에 들려고 애썼었다. 


무엇이 맞고 틀리고, 그 진위여부가 내게는 굉장히 중요했기때문에, 내 행동의 '정당성'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이상한 사람임을 방패삼아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시간이 갈 수록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말.

그리고 타인의 감정은

그저 타인의 말과 감정일 뿐임을.

그것이 다 내게 다 무슨 소용인듯 싶다.


타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떠오르면, 늘 그 사람 마음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듯 싶어 불편했다. 그리고 늘 어김없이 그런 감각이 들 때면 나의 투사로 결론 지으며 내가 이상하다 자책했다. '저 사람은 문제가 없어. 그래 내가 속이 좁아서 그래.'라고.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면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그 감정을 느꼈을 뿐임을. 그리고 그 감정 자체로 의미있는 감정임을.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분명 이유가 있고, 내게는 그 감정이 진실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이 기든 아니든, 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나의 FACT임을. 내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에 토달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나로 살 때 가장 자유함을. 빚진거 없이 내가 '나'를 믿어주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존중해 주고,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갈 때 내가 제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완전하다는 말이,

스스로 행복하라는 말이

유독 와닿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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