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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21. 2021

미치게 아파도 해야만하는 홀로서기

독립은 필연적인 시간입니다.


병아리는 알 속의 세상이 전부이다.

하지만 세상의 전부같았던 알 속에서 언젠가는 나와야만 한다. 


알에서 머물러있었던 그 시간은 병아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온전히 '의지하고 의존하겠다'는 병아리의 선택이였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에서 언젠가 한번은 겪어나가야만 했을 순간이 아닐까 싶다.


따뜻하고 안락했던 알이 어느 순간 점점 좁아지기 시작 할 때 병아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병아리의 안락한 알 또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전부라고 믿었던 그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 순간 느낄 두려움. 자신의 집이 되어준 고마운 알을 스스로 깨부수고 나가야 한다는 죄책감. 서로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아있었던 알과 병아리는 이제는 서로 의존해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병아리가 알에 남겠다고 선택하는, 순간 병아리는 알에 갇힌채 죽고만다.

알이 끝끝내 병아리를 알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순간, 알은 '돌맹이'와 다를 바가 없다. '생명'을 품은 알이 '죽음'이 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떠나는 자는 용기있게 독립을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보내는 자는 그 독립이 어떠한 모습이건 그 시간을 믿고 축복해주어야한다.


쉽지 않은 그 시간 속에서 서로 상처입고 아프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각자의 길에서 자신의 소명을 이루며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 하나였던 그 시간 속에서 분리되는 고통이 아프지 않다면, 그것이야 말로 서로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알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병아리는 보호 받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비바람, 그리고 어떤 위협으로부터 알이 있었기에 병아리는 그 곳에 몸을 숨길 수가 있었다.  알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 주었기에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올 정도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축복이며, 너무나 고마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알'이 병아리를 존재하게 해준 것 만은 아님을. 병아리가 있기에 '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었고,'알'이 있기에 병아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음을. 서로의 존재가 있었기에 나와 나의 존재가  빛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가끔 내가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그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이정도까지 해주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너는 왜 이것밖에 나에게 주지 못할까, 내게 돌아오는 것이 너무 하찮게 느껴져서 아이가 원망스러운 적도 참 많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내게 와주었던 순간 내게는 선물 같이 '엄마'라는 이름이 생겼고, '엄마'라는 역할이 생겼다.


'엄마'가 아니였다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깨달음. 

그리고 엄마가 아니였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아이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계란'이 될 뻔한 알이 '생명'을 품는 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병아리'라는 존재 때문이였으리라.


내가 가치가 있어서, 내가 잘나서 병아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병아리가 될 아이였기에 가능했음을. 병아리 또한 나를 품어줄 만한 알이였기에 그 알 안에서 온전히 머물 수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고

누가 맞고 누가 틀렸고 

누가 더 잘났고 못났다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음을.


병아리가 알 속에 머물렀던 시간도

알이 병아리를 온전히 품고 있었던 그 시간도

하나같이 다 필요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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