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lice, The Eagles & More
팀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팀 멤버 사이의 균형도 큰 균열 없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해체된 밴드를 보면 대개 이러한 인간관계의 균형이 깨어진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균형을 잘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균형자]를 갖는 것입니다. 균형자는 팀 내 관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멤버를 의미합니다.
이전 글에서 밴드의 균형점은 비대칭적이라는 점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개별의 밴드는 어떤 전형성 없는 나름대로의 "심리적인" 파레토 최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 균형 혹은 최적점이 심리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객관적인 형식의 문제 보다는 개개인의 주관적 지각과 감정의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균형자 이론]이란 개념을 통해 균형적인 밴드의 역학에 대한 보다 자세한 요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균형자는 바로 밴드의 "비대칭적인" 요소입니다.
The Police
8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 음악 차트에서 대활약한 뉴웨이브 밴드 The Police는 Sting의 밴드가 아니었습니다. 드러머인 Stewart Coperland가 원래 밴드의 리더였지요. 물론 데뷔 앨범 이후에 자연스럽게 스팅에게 힘의 균형이 이전되었지만 밴드 내의 서열싸움은 누구의 포기도 없이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습니다. 보컬 개성 있지 얼굴 잘생겼지 음악도 거의 다 만드는 스팅으로서는 굳이 투쟁하면서까지 밴드에 남아 있을 이유가 별로 없었겠지요.
예를 들어, 한 인터뷰에서 코펄랜드는 자신이 스팅 밴드의 드러머이기도 하지만 스팅이 자신 밴드의 베이시스트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기타리스트인 Andy Summers도 조용한 멤버와는 거리가 멉니다. 더 폴리스의 녹음 세션은 상당히 전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지요. 투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물지 않게 투닥거리는 싸움이 있었다지요. (술만 먹으면 피 터지게 싸웠다던 Black Sabbath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겠지만요.) 몇년 전 스팅의 생일 파티에서 예정에 없던 연주를 하다가 맘이 안맞았는지 서로를 째려 보던 영상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밴드는 작곡과 보컬이 다가 아닙니다. 밴드는 사운드가 중심이기에 크레디트에 이름이 없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큰 공헌을 하게 되는 밴드 멤버가 있기 마련입니다. 언제 어떤 넘버를 들어도 그 signature 사운드가 구별되는 폴리스가 그런 밴드였습니다. 스팅은 물론 다른 두 멤버도 음악적으로 뛰어났습니다. 다만 스팅이 보컬이고 작곡에 좀 더 소질이 있었기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요. 코펄랜드의 화려한 드러밍 스킬은 정평이 나있습니다. 카리스마와 리더십도 있지요. 서머스도 못지않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3-cord 펑크 기타리스트였던 창단 멤버 Henry Padovani를 대체하여 단순 무식한 펑크 사운드를 지성과 감성이 있는 포스트 펑크 사운드로 변환시키며 밴드 더 폴리스의 사운드를 완성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더 폴리스에는 한 수 접어주고 한 번 참아주는 멤버가 없었습니다. 다들 잘나서지요. 어쩔 수 없이 밴드는 지속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creativity의 정점에서 [Synchronicity]란 명반을 내고 깨끗하게 해체해 버린 것은 그때는 아쉬웠어도 지금 와서 볼 때는 멋있습니다. 이왕 그만 둘 바에야 가장 멋있을 때 그만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The Eagles
다음은 또 다른 잘 난 밴드 The Eagles입니다. 이글스는 70년대 이른바 west coast sound의 왕자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난다 긴다 하는 뮤지션이 다 모인 밴드이지요. Don Henry와 Glen Frey가 좀 특출 나긴 하지만, 또 다른 창단 멤버 Randy Meisner와 Bernie Leadon도 다른 밴드라면 리더를 했어야 하는 뮤지션입니다. (사실 Randy Meisner는 이미 밴드 Poco의 창단시 중심 기둥이었습니다.) 이 둘은 본인의 잠재력이 팀 내의 일진 두 명 때문에 다 펼쳐지지 못하자 심리적인 박탈감 끝에 팀을 떠나게 됩니다.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인 랜디 마이즈너는 첫 메가 히트 [Take it to the limit]의 주작곡자이며, Bernie Leadon 역시 데뷔 앨범의 [Witchy woman]의 공동 작곡자이며 초기의 컨트리 사운드의 주역인 기타리스트입니다.
교체 멤버인 Don Felder (1974년 가입), Joe Walsh (1975년 가입) 그리고 Timothy B. Schmit(1977년 가입)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펠더는 [Hotel california]의 주작곡자이고 다른 기타리스트 조 윌시와 함께 후기 이글스의 록 사운드의 중심입니다. 티모시 슈미트도 [I can't tell you why]의 보컬로 유명하지요.
균형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팀 내 권력자에게 순응하거나 싸우다가 나가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버니 리든이 1975년 글렌 프레이의 머리에 시원하게 맥주를 부어버리고 탈퇴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갈등 끝에 탈퇴한 멤버의 빈자리를 채울 때는 어떠한 점을 볼까요? 당연히 갈등이 없을만한 사람이 위주가 됩니다. 그러나 순둥 순둥한 새 멤버가 균형자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순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team creativity의 동력이 떨어지겠지요. 혹 억지로 순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팀의 생명력까지 소진하게 만들지요.
슈퍼 밴드에 대한 성공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강한 압력 속에서 녹음과 투어의 계속되는 루프가 갈등 관계에서 이어진다면 그 누구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마침내 이글스도 creativity의 정점이었던 1979년작 [The Long Run] 이후 해체합니다. 1994년의 재결성은 "비즈니스"였었지요. 하룻밤 공연에 수백만 불을 받는 이들인지라 비즈니스 관계는 공고합니다. 2016년 글렌 프라이의 사망 이후에도 그의 아들과 다른 유명 뮤지션을 동원해서 대박 공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특출 난 균형자는 Depache Mode의 Andy Fletcher입니다. 균형자 역할 외에는 거의 역할이 없기에 정말 특출나지요. 그러나 앤디 플레처는 80년 초 흔해 빠진 뉴웨이브 일렉트로닉 밴드가 90년대 세련된 얼터너티브 밴드로 성장하고 네 번째 decade에서도 별다른 노화 현상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Hall & Oates의 John Oates도 괜찮은 인격자입니다.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듀오 내에서 John Oates의 역할은 절대로 적지 않습니다. 대릴 홀이 선발 투수라면 존 오츠는 마무리 투수입니다. 존 오츠를 무시하는 조크는 그들 전성기의 두세 앨범에서 Daryl Hall의 역할이 두드러졌던 탓에 생긴 대중의 착시에 기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오츠는 좌절하지 않고 50년(!) 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들 둘이 절대로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실 형제처럼 소원하다가도 서로를 존중하고 중요할 때 힘을 합치는 이들의 케미스트리에는 사실 균형자로서 존 오츠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듀오인 Twenty One Pilots도 균형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다재다능한 Tyler Joseph와 함께 하는 드러머 Josh Dun는 단지 함께 연주하고 공연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항상 균형자가 밴드 멤버일 필요는 없습니다. The Beatles 해체의 원인이 Ono Yoko일까요 아님 Paul McCartney일까요? 사실 그 원인은 매니저였던 Brian Epstein의 갑작스러운 사망일 것입니다. 완벽한 균형자였던 그가 1967년 유명을 달리한 이후 비틀스는 이미 사실상 조금씩 해체되고 있었습니다.
강한 팀은 균형자가 필요합니다. 강한 팀에서는 기능뿐만 아니라 인성도 잘 섞여야 합니다. 물과 기름도 잘 섞으면 잘 쓰이는 융합물이 됩니다. 먹을 때 그 맛이 안 난다고 해서 드레싱을 섞는 숟가락이 없어도 된다고 말하시겠습니까?
숨겨진 The Police의 히트 싱글, [Invisible Sun] from the album [Ghost in the Machine] (1981), 브리티시 싱글 차트에서 3위.
*Title Image: [The Police], 폴리스는 알려진 이미지보다 더 다이내믹한 밴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