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하는 밴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반대로 멤버가 밴드를 떠나게 되는 이유도 있겠지요. 경영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글 묶음은 대중음악 밴드를 통해서 경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독자가 항상 작자의 의도를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한 밴드의 멤버가 자신의 밴드를 떠나게 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그 연결점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Alan Wilder는 영국의 일렉트로닉 록그룹 Depeche Mode에 소속되어 있었던 뮤지션입니다. 견고한 craftmanship을 기반으로 편곡과 제작에 큰 기여를 하며 팀의 한 중추 역할을 해왔던 그는 1995년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 발표문을 통해 갑작스러운 팀 탈퇴를 선언해 팬들과 업계를 놀라게 합니다.
... 1982년팀에 가입한 후, 저는 그룹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모든 에너지와 열정과 헌신을 다 쏟으며 계속 분투해 왔습니다. 팀 내기여도가 일관적으로 불균형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렇게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그룹 내에서 이러한 저의 기여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받아야 할 존중과 인정을받지 못했습니다...
... Since joining in 1982, I have continually striven to give total energy, enthusiasm and commitment to the furthering of the group's success and in spite of a consistent imbalance in the distribution of the workload, willingly offered this. Unfortunately, within the group, this level of input never received the respect and acknowledgment that it warrants...
알랜 와일더가 탈퇴하기 직전의 디페시 모드
1993년 발매된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앨범의 활동 시기는 여러 모로 디페시 모드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David Gahan은 헤로인 중독이 심각한 상태였고, Martin Gore와 Andy Fletcher도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앤디 플레처는 정신적인 문제까지 겹쳐 프로모션 투어의 대부분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고 데이비드 가한은 매일매일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상태였지요.
전 세계적인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던 1991년작 Violator의 성공을 한 층 더한 정교함과 화려함으로 재현했던 다음 앨범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을 제작할 당시, 알랜 와일더는 사운드를 창조하기 위한 디테일 작업을 거의 혼자서 담당해야 했습니다. 마틴 고어는 곡만 던져놓고 클럽으로 사라지고, 앤디 플레처는 거의 쓸모가 없었으며, 데이비드 가한은 녹음을 위해 집중관리를 해야 하는 처지였지요. 앨범 타이틀인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은알랜 와일더의 헌신에 대한 자기 헌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누적된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더해투어 과정에서 발생한 갖가지 사건은 알랜 와일더의 인내 수준을 초과하게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을 묵묵히 감당했지만, 그것은 총체적으로 누구도 인내하기 힘든 수준의 압력이자 부담이었습니다.
Songs of Faith and Devotion의 녹음 세션 중인 알랜 와일더, (아마도 다 놀러 가고...) 혼자 드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 후 마틴 고어가 행한 한 인터뷰에서 알랜이 떠난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 표정을 관찰해 보면, 그는 그 이유를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로서는 자신이 팀의 중심이고 따라서 나머지 어떤 멤버가 특정 상황에서 불만을 갖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런이 떠난 후, "이제 디페시 모드는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음에도 말입니다.
알랜은 팀의 2집인 A Broken Frame부터 팀에 합류했습니다. Just Can't Get Enough이 수록된 1집 Speak & Spell이 히트하자 Synthpop의 선구자였던, Mute Records의 주인이자 프로듀서인 Daniel Miller는 팝 취향의 댄스에 치중하는 리더 Vince Clark과 앨범 위주의 밴드 음악의 분위기를 풍기는 마틴 고어의 이원화를 계산에 두고 빈스 클락이 Yazoo라는 댄스 팝 듀오를 결성하여 독립하도록 유도합니다. 빈스 클락이 탈퇴하자 이에 대체 멤버로 충원된 것이 알랜 와일더입니다.
Martin Gore와 Vince Clark: 2012년 이 둘은 VCMG란 이름으로 오랜만에 협업하여 Ssss란 앨범을 출시합니다.
유일하게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멤버로서 합류하자마자 다른 멤버의 연주 멘토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랜은 2집 활동 당시 정식 멤버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같은 동네 친구로 이루어진 기존 멤버들의 텃세를 해결하는 시기였다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불균형의 경험은 아마도 그가 팀 내에서의 부정적 감정을 마음에 쌓아 두게 되는 씨앗이 되었을 것입니다.
알랜의 탈퇴는 단지 그러한 축적이 Devotion 제작과 투어 기간에 터져 버린 것입니다. 이 일을 방지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입니다. 단지 몇 마디의 진심으로 심적 균열은 아마도 메꾸어졌을 것입니다. 그 역할을 했을 만한 앤디 플래처의 멘털이 그 당시 붕괴되어 있었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겠지요.
디페시 모드의 오리지널 멤버 (맨 오른쪽이 빈스 클락)
알랜의 느닷없는 탈퇴 발표문을 보고 다른 영국 그룹 The Cure의 한 멤버는 팀 멤버가 그러한 생각을 한다면 어떤 밴드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비난합니다. 한편, 같은 그룹의 리더인 Robert Smith는 알랜에게 밴드 가입 요청을 하지요. (여기서도 입장의 차이가 보입니다.) 알랜은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그가 큐어에 있었다면, Disintegration 정도의 명반이 하나 더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게 제 상상입니다. 어쨌든 이후 그는 Recoil이란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펼칩니다.
가장 잘생긴, 맨 오른쪽의 알랜 와일더가 팀에 가입했을 당시의 디페시 모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디페시 모드는 1997년 Ultra 앨범으로 알랜 와일더 없이도 소프트 랜딩에 성공하고, 현재까지도 장수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현재 시점에서도 아직 사운드의 퀄리티가 저하되지 않았으며, 특히 2005년 작 Playing the Angel은 Devotion 앨범에 필적하는 명반이었습니다.
데이비드 가한이 2005년 이후 외부 작곡팀과 함께 라이팅에 참여하면서 다양성이 증가하는 등 나름대로 삼인조로서의 최적화를 이루었습니다. 21세기 이후 가사의 성향에 크게 우려되는 바가 있기는 하지만, 사운드 면에서는 항상 차기 앨범이 기대되는 장수 밴드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알랜 와일더의 탈퇴가 아쉽습니다.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21세기에 들어와 서로의 공연에 방문함으로써 알랜은 디페시 모드의 삼인조와 공식적으로 화해했지만, 이미 그들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최적점을 찾았습니다. 특히 삼인조가 현재의 그룹 활동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음을 볼 때 어떠한 변화도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군요.
화해의 포옹: 디페시 모드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한 알랜 와일더
팀에는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균형 감각과 미적인 사고 능력이 필요합니다. 균형은 파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표면이 아니라 심층에 관한 것입니다. 균형이 무너질 때 팀은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변화를 겪어야 합니다.
팀의 균형점은 항상 다수입니다. 어떤 균형점이 좋은가 하는 질문은 사뭇 취향의 문제겠지요. 강한 팀의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적인 최적점을 찾아가는 융통성과 창의가 필요합니다. 어떤 특정 상황은 아무리 대비하고 막아도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리더는 그 과정에서 창의를 통한 비전의 제시와 인내를 가지고 팀을 이끌어 가야 하겠지요.
왜 알랜 와일더는 팀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을까요? 현실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으며, 필연은 우연처럼 다가옵니다. 대체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걸작품은 대체할 수 없는 재료로 구성됩니다.
"Somebody", Soundcheck with Alan Wilder and Martin Gore: This was recorded at the soundcheck for the Royal Albert Hall benefit concert on February 17th 2010. This is the first time Alan performed with Depeche Mode since the Summer Tour of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