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잭스윙을 중심으로 한 케이팝의 한 계보학
케이팝의 현재의 성과는 놀랍습니다. 현재의 성과가 어떻게 도출되었는가 하는 점을 [환경론적으로] 그리고 [일화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부분적인 일화일 뿐 전반적인 비평이 아님을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진영, 유영진, 방시혁, 방탄소년단 등 케이팝의 한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뉴 잭 스윙의 첫 앨범은 사실 마이클 잭슨의 동생인 자넷 잭슨의 1986년작 [Control]로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필자는 이 앨범이 80년대 팝음악계를 정의하는 음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은 미네아폴리스 출신의 또 다른 실력자 Jimmy Jam & Terry Lewis의 프로덕션이자 그들의 메이저 breakthough였습니다. Human League의 1986년 넘버원 싱글 [Human]과 George Michael의 1988년 넘버원 싱글 [Monkey]도 그들의 작품입니다.
Babyface와 LA Leid도 뉴 잭 스윙의 발흥에 크게 기여합니다. 이들이 제작한 Bobby Brown의 1988년작 [Don't be cruel]은 뉴 잭 스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 됩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세 번째 싱글 [Every little step]은 90년대 케이팝의 댄스 넘버의 한 전형이 됩니다. 특히 박진영에게는 그의 전 음악활동을 통해 영감을 주게 되는 넘버입니다.
Teddy Riley가 뉴 잭 스윙의 완성자로 인식되는 것은 그의 음악을 소개할 때 처음 쓰인 뉴 잭 스윙이란 용어가 나중에 일반 장르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를 스카우트해서 뉴 잭 스윙의 말기를 대표하는 앨범을 제작했던 것도 그 대표성의 또 다른 근거가 되겠습니다. 사실 테디 라일리 자신이 사용한 자신의 음악에 대한 타이틀은 [Sophisticated bubblegum music]이었습니다. 메인스트림으로서 뉴 잭 스윙의 정의가 되며, 아이돌 그룹에게는 더욱 어울리는 타이틀이 되겠네요.
흑인의 음악으로 하나의 마이너 장르였던 R&B가 80년대 이후 메인스트림이 될 때 취했던 형식이 뉴 잭 스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힘입어 이른바 urban contemporary는 90년대 이후 팝 뮤직의 중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