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는 입체적인 사고가 필요해

VST 리더론

by 서태원 Taewon Suh

21세기가 요구하는 매우 강한 팀의 리더에게는 여러 가지 적극적인 품성이 필요합니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이 같은 품성의 몇 가지를 설명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의 성격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단일한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글들도 그 다양한 차원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일 것입니다. 그 전체를 이해하기길 바랍니다.


Simplicity vs. Complexity

매우 강한 팀의 리더는 복잡함 속에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정리된 일을 하는 것에는 리더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불확실성과 혼란의 상황에서 두드러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단순한 일만을 하길 원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리더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편 아름다운 것은 사실 단순합니다. 그리고 리더의 아름다움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해결하는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일을 고르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일에 뛰어들 것입니다. 그는 그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 숨겨진 단순함을 드러내는 것이 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원리를 상실한 단순화는 일하는 자의 편의만을 위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대로의 단순한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강한 팀의 일하는 빙식일 것입니다.


그 리더는 또한 자신의 잣대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고집 어린 단견으로 본질을 상실한 채 단순화된 남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먼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파악합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는 정치학의 의미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정치학은 아무런 결론도 가져오지 않지만, 무시해서는 안될 요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중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적합화된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지향은 인간적인 안배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인위적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단순함은 사실 입체적입니다. 단순함은 본질 그대로에 대한 것입니다. 본질은 인간의 인식에 의해 왜곡되고 복잡해진 부분을 제거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인위적인 "아름다움"도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본질의 아름다움에 근접하지 못합니다. 단순하게 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복잡함을 가져옵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이차원으로 압축되어 단순화된 공간이 아니라 입체적인 공간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상식적인 사고로 인해 변형되지 않은, 존재하는 그대로의 실재에서 해결책을 보고 만지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입체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지요.


지식기반 vs. 실재기반

[지식 자랑]의 문화가 유행하는 것을 봅니다. 중근세의 살롱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독서의 유행이 관찰되곤 합니다. 이러한 유행에 빠진 사람은 위험합니다. 현학적이기 때문이지요. 현학적인 사람은 학자는 될 수 있어도 리더는 되지 못합니다. 적어도 매우 강한 팀에서는 말이죠.


지식을 자랑할 때, 그는 그 지식에 매몰됩니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 대개의 것을 지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우리의 지식은 모두 반박 가능해야[refutable] 합니다. 반박 가능하지 않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실 만을 말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매우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아는 사실과 실재는 "사실" 별 볼 일 없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리더에게는 어떤 특별한 지식을 아는 것보다 실재에 근거하여 현상을 파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이론을 알지 못해도 어떤 판단을 내릴 충분한 이유를 볼 수 있습니다. 지식에 매몰된 자는 그가 아는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멍청이가 되지만, 지식에서 자유로운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단순한 직관을 갖게 됩니다.


물질주의 vs. 허무주의

인간 지식의 제한점을 파악하고 겸손해진 이후에도 우리는 더 많은 장애물을 갖습니다. 사실과 눈에 보이는 것에만 머물 때 우리는 필수적으로 물질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적 이상] 등이 이에 관련된 결과의 하나입니다. 그럴싸하고 논리적이지만 항상 예상 밖의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실이 실재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잘못된 전제를 통해서 나오는 예측은 항상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 대한 허무주의도 사실 같은 맥락에서 생성됩니다. 이기적인 휴머니즘에서 시작되지요. 인간 자체, 혹은 인간의 능력 자체에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희망은 인간이 갖게 되는 이상에 있지, "그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따라서 허무주의는 이상을 행하는 사람에 대한 불공평한 비판에서 나오게 됩니다. 대개 그 비판은 그가 추구하는 이상처럼 그의 인격도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전제에 기반합니다. 그 결과는 항상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의 인간은 위버멘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항상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찾게 되지만 그것 또한 허무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과거 몇 번이나 속아봤습니까? 역사도 같은 것을 말합니다.


어떤 개개의 인간에게도 희망은 없습니다. 나도 당신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같은 클래스의 인간일 뿐, 사실 다른 클래스의 인간은 현재 시점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달라 보여도 알고보면 [오십 보 백 보]일 것입니다. 이 점을 아는 데서 멈춘다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향해 있는 사람들만이 매우 강함 팀이 이룰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평판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 목표를 바꾸게 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상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현실에 좌절하거나 만족하여 머물러 있는지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를 만들 것입니다. 그 차이는 크며 그 차이가 마지막 클래스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태어났지만 다르게 죽을 것입니다. 당장의 윤리성과 인격은 현시점에 제한된 외면적 결과이며 그 단기적인 차이는 이상이 가져오는 장기적인 클래스의 차이에 비해 사소한 것입니다. 우리는 윤리와 도덕의 차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상에 따른 마음[heart]의 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매우 강한 팀의 리더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듯이, 매우 강한 팀의 리더는 다양한 차원을 통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또한 시간이라는 변수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것의 실체는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지금 아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리더의 시야는 미래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Title Image: Georges Braque (1908), [Viaduct at L'Estaque]


Peter Gabriel (1977), [Solsbury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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