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분, 5km를 넘겼다.
마음먹고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틀 전 필라테스를 갔다. 3주만 이었다. 장염에 야근에 출장 때문에 벌어진 공백이다. 잔뜩 긴장한 채 침을 꿀떡 삼키며 필라테스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목도 많이 빠져 있네요. 요즘 운동 안 하시죠?”
“네, 요즘 통 바빠서요. 그래도 한 번씩 뛰어요”
“몇 분요? 설마 30분 뛰는 거 아니죠?”
“,,,,,,”
‘30분요’라고 대답할 찰나에 들어온 선택지가 이미 틀렸다니. 말문이 막혔다. 원장님은 내가 대답이 없자, 확신이라도 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다시 말했다. 30분 가지고는 운동이 안된다고, 그렇게 할 거면 뛰지 말고 차라리 쉬라 했다. 자존심 상했다. 나름 죽상으로 30분간 뛰면 3.5킬로나 뛰는데. 알고 보니 고작이었던 것이다. 오만가지 핑계가 떠올랐다. 허리 디스크에 바쁜 직장인이고 연말연초라 회식이 많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다부진 입을 보고는 핑계를 삼켰다. 분명 자신이 믿었던 회원이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 의지가 약한 이유, 면역력이 헐거운 이유를 알 것 같다. 스스로가 정한 한계점에 갇혀 있었던 거다. 더 뛰면 고통스러우니까 여기가 최댓값이라며 선을 그었다. 100도가 넘어야 물이 끓기 마련인데, 95도 즈음에서 아무런 변화 없다며 그만둔 꼴이다. 필라테스 내내 딴생각했다. 그간 풀지 못했던 신체와 마음에 신비를 떠올렸다. 몸은 그저 원장님 생각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 모든 정신과 의지는 스스로가 정한 한계점을 허무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 아파트 지하 헬스장에 갔다. 날이 추워 나가기 싫다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그날따라 내 입술은 단호했다. 그저 나약한 소리라며 일축했다. 바로 같은 라인에 헬스장이 있기에 추위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그저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결국 헬스장 현관문을 열었다. 1시간 뛰어야 한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의식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시계만 더 볼 것 같았다. 완벽한 순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어라 뛰다 보니 최고 기록을 넘겼네’라고.
러닝은 평소보다 빨리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덜했고, 이어폰을 바로 꽂았으며, 선곡도 빨랐다. 의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러닝은 보통 7.8로 놓고 뛴다. 오늘은 왠지 7.6을 놓고 뛰고 싶었다. 0.2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오늘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머릿속에 이유가 떠올랐지만 읽지는 않았다. 10분쯤 뛰었을까, 스마트 워치 심박수는 140을 겨우 넘기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160 가까이 되었을 수치다. 0.2 차이로 이렇게 차이가 날까 하며 신기해했다
오늘은 뛰면서 영상은 보지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만 들었다. X세대가 20대를 주름잡던 노래를 들으며 고통을 즐기려 했다. 그렇게 흥얼대며 무심코 계기판을 봤다. 45분, 5킬로. 순간 흠칫 놀랐다. 꼭 바라던 상황이지만 의식하지 않던 순간이라 웃지는 못하고 입꼬리만 올렸다. 언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냐며 흡족해했다. 오다 주웠다는 표정으로 심박수를 봤더니 아직 160도 넘기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스팀팩이라도 맞고 뛰는 사람처럼 지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날 나는 1시간은 조금 못 미쳤지만 6킬로 가까이 뛸 수 있었다.
자신이 정한 만큼 몸과 마음의 총량이 정해지기 마련인가. 과거부터 많은 사례가 있다. 올림픽 100m 달리기에서 ‘마의 10초 벽’이 있었다. 인간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10초를 깰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100미터 결승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미국 대표 짐 하인즈가 9.95라는 숫자로 인간의 한계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다음 올림픽부터는 10초는 인간의 한계가 아니었다. 다수가 돌파할 수 있는 어느 기준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 10초를 돌파하고, 다른 선수들 또한 한계점을 더 높게 수정했기에 가능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시련은 신이 감당할 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감당할 만큼만 덜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또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을 높게 잡아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날 집에 와서 올해 목표를 다시 수정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다 이유가 있다며 혼자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