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멋진 여자들이 어디에나 있다
작심삼일. 굳건한 다짐도 3일을 못 간다는 뜻처럼 인간은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가 가장 의욕적이었다가 점점 그 마음이 사그라들곤 한다. 거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보통 너무 잘하고 싶어서 반대로 그만두고 싶어진다. 세상에는 내가 갓 시작한 일을 이미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적당한 재능을 갖고 시작하지 않은 이상, 대개 모든 시작은 초라하다. 하지만 초라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나의 의욕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현실을 볼 때면 괜히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진다. 당연히 못 하니까 시작한 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못해서 그만둔다. 지금 시작한 크로스핏도 그랬다. 등록하고 딱 3번째 갔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첫날 벤치프레스를 배웠을 때는 그냥 누워서 쇳덩이를 들었다가 가슴팍 부근에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가 내렸다가, 몇 번 반복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 원판을 끼우지 않은 빈 바를 별 난관 없이 들길래 나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당연히 들자마자 바에 깔렸다. 20kg가 이렇게 무거웠다니. 근데 다들 이걸 쉽게 드는 걸로 모자라 무게까지 추가한단 말이야? 의욕을 배반하는 팔뚝이 얄미웠다. 하지만 세 번째인 오늘은 달라야 한다. 마침 오늘의 운동은 달리기 400m, 데드리프트 12회, 벤치프레스 12회, 총 4라운드. 벤치프레스를 하면서 빈 바에 깔리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 세 번까지 깔리면 많이 비참할 거 같으니까. 오늘은 반드시 조상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쇳덩이를 들고 말겠다는 열의로, 배에 힘을 꽉 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바를 번쩍, 들릴 리가 없지. 빈 바는 잠시 들리자마자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내 가슴팍 위로 착, 안착했다. 쇠붙이에 깔려 별 저항도 못 해보고 패배한 나는 생각했다. 아, 이거 혼자서는 절대 못 들겠네.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아침나절에 칼라 토머스와 오티스 레딩의 음악을 MD로 들으면서 1시간 15분간 달렸다. 오후에는 체육관의 풀에서 1,300미터를 수영하고, 저녁에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했다.’라는 문장을 덤덤하게 쓰는 멋을 부리고 싶었는데, 언젠가 내게도 ‘이번 연도에는 3대 300을 찍었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10년 이상 달리기를 한 사람의 문장을 3일 만에 따라 하고 싶다는 심술에 괜히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쯤, 머리맡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나를 압도하던 바가 쑥 하고 들렸다. 나의 간절함에 응답한 분이 물론 조상님은 아니었다. 웬 중년의 여성분이셨다. 단발머리의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가와 나를 누르던 쇳덩이를 제자리에 올리고서, 내게 ‘같이 운동할까요?’라고 말해줬다. 구세주의 손길에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내가 벤치 프레스를 하는 동안 양손으로 바를 살짝 들어주셨다. 그녀의 이름은 모르지만 편의상 그녀를 ‘선’이라고 부르고 싶다. 선은 진짜 선(善)했으니까.
허리는 아치 모양으로, 네네. 맞아요. 그렇게.
나는 선의 보조에 맞춰 힘차게 바를 밀어냈다. 그날은 계속 선이 나의 운동을 보조해줬다. 선은 꾸준히 나의 자세를 봐주고 격려해줬다. 그러다 보니 고작 3라운드밖에 하지 못했는데도 벌써 한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선은 시계를 보다가 ‘이제 가야 하는데 더 하고 싶은 운동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운동한다는 건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오늘도 마지막 라운드까지 다 하진 못한 채로 신발을 구겨 신고 크로스핏장 바깥으로 나섰다. 심지어 오늘은 나 혼자 못한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선도 같이 못 했잖아? 왠지 남의 운동을 방해했다는 생각이 들어 위축되는 그때, 먼저 바깥으로 나갔던 선이 왼손을 까딱이며 이 방향으로 가느냐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이 같네요. 우리 같이 가요.
선과 나는 집으로 가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쩌다 운동하게 됐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선은 내게 자신이 몇 살 같냐고 물었다. 나는 선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구운 아몬드 빛깔의 피부를 가진 그녀는 척 봐도 오래 운동한 사람 특유의 단단한 기골을 가졌다. 처음 그녀를 마주하면 턱선 아래로 찰랑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과 단단하고 상냥한 눈이 먼저 들어온다. 그나마 웃을 때 생기는 얼굴의 잔주름만이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만한 척도인데, 굳이 평하자면 마흔의 후반이거나 쉰 초반이 아닐까 속으로만 추측했다. 감사한 사람에게 조금의 실례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음,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선이 활짝 웃었다.
올해 내 나이가 60이에요.
와! 아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으신데.
나는 진심으로 놀라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집으로 가며 내가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운동 잘 아시고 잘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요”라는 말과 함께 고마운 마음을 그녀에게 전하자, 선은 운동을 아주 오래 해서 그런 거라고 자신도 처음 할 때는 오늘의 나 같았다고 말해줬다. 그 말에 사흘간의 초라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괜히 변명하는 심정으로 “제가 평생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어서 잘 못 해요. 오늘 했던 벤치프레스도 힘들었지만, 사실은 뛰기만 해도 힘들어요. 저 첫날에 뛰다가 화장실에서 토했거든요”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겨 나를 골똘히 보더니 남모르는 비밀을 공유하듯 내 귀에다 무어라 속닥였다.
…나는 가끔 힘들면 왼쪽에서 두 번째 트레드밀을 타요.
네?
왼쪽에서 두 번째 트레드밀은 200미터만 뛰어도 400미터 뛰었다고 표시돼요. 계기판이 예전에 고장 났거든요.
아니 정말요? 그런 암묵적인 꼼수가 있었다니. 풋내기는 몰랐던 크로스핏장 안의 비밀을 전수해주며 선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다가 다치는 거보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거 같아요. 무리하다가 다치면 열심히 할 수도 없으니까. 나도 처음에는 힘들어서 거기서만 뛰었어요. 사실 요즘에도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그런 꼼수를 부리지만. 그리고 보조받는 것도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처음인데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하다 보면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날도 올 거예요. 운동할 때는 다들 서로서로 도와주거든요. 별로 미안해할 게 아니에요.
오늘의 운동은 다 못했지만, 내일의 운동은 아니면 내일모레의 운동은 해낼 수도 있으니까. 그걸 해내려면 무리한 오늘보다 착실한 오늘을 쌓아나가는 게 필요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늘 못한 하루가 내일 조금 더 잘하기 위한 하루로 느껴져서, 아까의 창피함이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도 함께 걸으며 선은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노력과 잘 먹고 잘 쉬는 법을 내게 알려줬다. 찹찹한 저녁 공기를 맡으며 서로의 운동을 이야기하는 사이, 우리는 갈림길을 이르렀고 가벼운 손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반대방향으로 멀어지는 선을 뒤로하고 마저 집으로 향하는데, 나도 나이가 60세일 때 저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보고 배울 멋진 여자가 정말 많아. 그녀와 나의 간격 30년. 앞으로 30년 뒤를 기대할 이유가 생겼다. 작심삼일이 작심 삼십 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