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최악인 당신과 그래도 한 달은 만나보려고 해요
요즘 들어 계속 허리가 뻐근했다. 30분만 앉아도 허리뼈에서부터 불쾌한 통증이 느껴졌다. 의자를 많이 바꿔봤지만, 여전히 장시간 작업이 힘든 걸 보면 내 몸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하기야 30년 무탈 경력이 의심스러운 몸이긴 하다. 살면서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해봤으니까. 근육의 굴곡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평한 등과 체지방만 가득한 출렁거리는 배로 용케도 잘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잘 살지는 미지수였다. 그래서 두 번째 책 집필이 끝나고 결심했다. 가까운 곳에서 운동을 꾸준히 다녀보자. 집 근처에는 헬스며 필라테스, 수영, 스피닝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하지만 죄다 한 번씩 찍어 먹어봤기 때문에 아직 도전해보지 않은 크로스핏을 등록하기로 했다. 크로스핏 첫 수업을 앞두고 점심에 엄마와 최후의 만찬을 먹었다. 쌀국수와 짜조 그리고 분짜까지. 이제 운동 시작하면 식단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니까,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날에 최대한 많이 먹어두자는 마음이었다. 그럼 든든하게 먹었으니까 아주 익숙한 평소의 루틴대로 누워볼까? 그렇게 운동 가기 전까지 행복하게 내리 잠만 잤다. 약 4시간 뒤, 나는 그 선택을 아주 후회하게 되지만.
누굴 만나든 초면에는 항상 묘하게 긴장되고 어색하다. 이건 운동에도 예외는 없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기구들 사이로 무거운 쇳덩이를 바닥에 탕탕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서로를 향해 박수 치고 기합을 넣는 등 함께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광경이 내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크로스핏을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우락부락 무섭게 생겼는데? 왠지 모르게 친화력도 좋고 에너지가 넘치는 외향인, 그런 느낌이랄까. 내 생에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한 번도 친해져 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냥 우두커니 한 구석에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오래지나지않아 하나둘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센터 한가운데 있는 칠판 앞으로 향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 크로스핏장 안에는 작은 칠판이 있는데, 회원들은 도착하면 모두 그 앞에 모여 오늘의 운동을 확인한다. 그날도 거기에는 오늘의 운동이 적혀있었다. 달리기 200m, 풀업 12회, 벤치 프레스 12회, 스키 200m를 총 합쳐서 5라운드. 관장님은 내게 운동 시 자세를 어떻게 하고 어디에 힘을 주고 해야 하는 건지 꽤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당시야 어찌 보고 따라 하긴 했는데, 집에 갈 때쯤 되니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더라. 첫날은 그냥 턱걸이와 윗몸일으키기를 풀업과 싯업이라 부른다는 정도만 알게 됐다. 처음이니까 통성명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자. 나머지는 차차 알아가게 되겠지. 그래도 이들과의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문제는 바로 트레드밀이었다. 타는 법은 간단했다. 그냥 위에서 달리면 됐다. 제자리에서 빨리 뛰는 만큼 발판이 빨라진다. 하지만 나는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200m는커녕 동네 한 바퀴도 산책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다리가 아프고 숨이 가쁘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괜히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불편은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한 3라운드를 뛰기 시작할 때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속뿐 아니라 머리도 어지러운 거 같았다. 평생 이런 적 없다가 안 어울리게 웬 뜀박질이냐는 불평이었을까. 타다 말고 내려와 조심스럽게 여자탈의실로 향했다. 숨이 가빠 그런 건지 다른 문제가 생긴 건지, 살면서 달리기조차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겨우 숨을 고르고 올라오는 속을 누른 뒤, 다시 트레드밀로 올라가서 천천히 뛰어봤다. 이번 신호는 더 강렬했다. 확실히 내 안의 무언가가 지금 당장,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초면에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남의 사업장 한가운데서 (위) 속사정까지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달리는 걸 멈추고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가는 중에 여러 번 고비가 있었으나 장기(臟器) 자랑은 그렇게 아무 데서나 하는 게 아니라며, 조금만 참아달라 속을 다독였다. 화장실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야 내 안의 모든 걸 게워낼 수 있었다. 배출과 동시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살면서 ‘아, 토할 거 같다’라는 말을 그만큼 괴롭다는 의미로 써본 적은 있지만 진짜 실행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크로스핏이 처음부터 해내다니, 아주 최악인데? 시원해진 속과 함께 남은 운동을 꾸역꾸역 다 끝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생각을 정리해봤다. 이 운동, 첫인상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만 두지는 말자. 첫인상은 많은 걸 속이기도 하니까. 사람한테도 최소 세 번까지는 기회를 주는데 운동도 최소 한 달은 다녀 봐야 알지 않겠는가. 그렇게 초면에는 별로였지만 만날수록 좋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되뇌며, 크로스핏 씨도 두 번 세 번 만나볼수록 좋은 사람 아니 운동이길 소원했다. 대신 내일은 운동 가기 전에 많이 먹지 말아야지. 특히, 쌀국수랑 짜조는 당분간 입에도 대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