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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24. 2022

오늘부터 함께 말랑말랑해지지 않을래요?

운동이 힘들면 혼자 말고, 같이 해!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외롭고 힘들어. 나는 온라인에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한 열댓 명의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 중 한 명인 파파야 씨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 파파야 씨와 나는 온라인에서 취미와 자기 계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파파야 씨는 직장을 다니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남은 시간에 번역도 하는,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는 계획적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런 철두철미함과 어울리지 않게 이따금 온라인에서 툭툭 던지는 말들이 엉뚱하고 귀여워서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기회가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바로 파파야 씨가 연차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 충동적으로 나도 함께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낮에 소문난 맛집에서 맛있는 걸 먹고, 이렇게 만난 추억을 남기겠다며 인생 네 컷을 10만 원어치나 찍고서, 밤에는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마시며 숙소에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밤 10시가 지나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그녀가 별안간 마가리타를 마시다 말고 크게 외쳤다.


 맞다! 지금 당장 스트레칭해야 해!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몇 명도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은 서로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자 한결 더 급박해지더니 숙소 방안으로 우르르 들어가 어떤 유튜브 영상을 하나 틀었다. 영상 안에는 웬 여성분이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바닥에 누워 상체와 하체를 늘렸다가 당겼다가 하며 온몸을 풀고 있었는데, 별안간 모두 함께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술을 마시다 말고 취중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가히 행위예술다웠는데, 나도 기분 좋게 술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 예술 행위에 동참하게 됐다.


 너네 뭐 하는 거야? 으하하. 나도 같이할래!


 나 빼고 재밌는 건 반칙이라는 마음으로 나도 그들 옆 한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영상 속 스트레칭을 따라 했다. 어깨가 말리지 않게 가슴을 열어서 복부에 힘을 주고 내쉬는 숨에 후. 약 15분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행으로 인해 피곤했던 전신을 말랑하게 풀었다. 짧은 영상이 끝나자 파파야 씨는 운동을 인증해야 한다며 우리를 모았다. 우리는 서로의 맨발을 모으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한 대화방에 올라갔다. 이 대화방의 이름은 ‘말랑말랑 방’이다. 말랑말랑 방은 일상생활에서 경직된 몸을 하루 일정 시간 움직여서 말랑말랑하게 만들자는 취지의 스트레칭 및 운동 인증 방이다. 이 방안의 여성들은 제각기 다양한 형태로 매일 몸을 풀고 있다. 유튜브 스트레칭의 바이블인 강하나 스트레칭은 이 방의 단골 인증 소재이다. 방장인 파파야 씨는 주 3회 새벽 수영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방송 댄스나 헬스, 사이클, 러닝, 필라테스 등 다양한 활동으로 매일 피로가 쌓여 뻣뻣해진 몸을 말랑하게 만든다. 파파야 씨는 나에게도 이 방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당시 나는 크로스핏을 할 생각’만’ 있었던 터라, 약간 머뭇거렸는데 그녀는 여행 내내 이 방이 마나 멋지고 재밌는지를 조잘조잘 자랑해댔다.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 파파야 씨의 재잘거림과 술을 마시다 말고 자기 몸을 사정없이 늘리던 귀여운 여성들이 생각나서 홀린 듯이 대화방에 들어가게 됐다. 덕분에 나는 생각만 했었던 크로스핏을 이 방 덕에 조금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 네 번 이상 자신의 운동을 인증한다. 운동이나 스트레칭, 무엇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찍어서 대화방에 올리고 수행한 요일을 함께 적는다. 만일 일주일에 4번 이상 운동을 인증하지 않으면 ‘거북이’ 이모티콘을 닉네임 뒤에 달아야 한다. 이것 이외에는 별다른 벌금이나 퇴출 시스템이 없다. 그냥 오직 ‘거북이’ 뿐이다. 파파야 씨는 하필 거북이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트레칭을 안 하면 거북목이 심해지겠지? 그럼 육지가 아니라 바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육지에서 생활하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 스트레칭을 게을리하면 안 돼. 거북이 이모티콘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인간보다 거북이에 가까워진다는 뜻이야!


 놀라운 건 이 그림 데이터에 불과한 거북이가 벌금보다 더 큰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왠지 모두 자기 닉네임 뒤에 거북이를 다는 건 싫은지, 대화방 안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주 4회 이상 운동을 한다. 안 한다고 진짜 거북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화방에서 장기간 운동 인증이 없는 회원은 방장 파파야 씨에게 개인적으로 귀여운 물음표 세례를 받는다. 어떤 물음표는 느낌표보다 따뜻하면서도, 행동을 끌어내는데 더 강한 힘을 가진다.





 바빠?

 왜 요즘은 말랑말랑 안 해?

 뻣뻣하게 마른 거북이가 되고 싶은 거야?


 그녀의 귀여운 물음표 덕에 대화방은 활발하게 돌아간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는 우리 여자들의 소소한 운동이 계속되면 좋겠어. 나도 그녀의 따뜻한 물음표가 계속되면 좋겠다. 부끄럽지만 최근에 나는 운동을 한 주나 쉬어서 1 거북을 달성했다. 그리고 오늘 크로스핏을 가지 않으면 2 거북 달성이다. 거북이를 두 개나 달 수는 없지. 거북이 하나 정도야 애교로 용인할 수 있지만 도저히 2 거북은 되기 싫어, 주중에 운동이 가기 싫어서 드러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운동 가방 안에 복압 벨트를 넣게 된다. 그리고 운동을 가지 않는 주말에는 최소한 스트레칭이라도 꼬박꼬박 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관계는 이렇듯 아주 멀리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꾼다. 부디 서로의 건강을 멀리서나마 응원해주는 거북이들이 영영 바다로 돌아가지 않아, 이 말랑한 관계가 꾸준하길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혼자서 운동을 시작하기 두려운 당신에게 파파야 씨가 말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때요. 당신도 오늘부터 말랑말랑해지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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