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 야외 달리기
처음에는 분명, 같은 타임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며칠 동안 나 혼자서 운동하게 됐다. 다른 타임에는 회원들이 많은데, 왜 내 타임에만 아무도 없지? 내 앞 뒤 타임으로 여성분들이 서로 인사하고 같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까 괜스레 외로워졌다. 웃긴 건 이렇게나 외로워하는 내가 잡담을 그렇게 즐기진 않는다는 거다. 예전에 수영을 배웠을 때는 회원 간의 스몰토크가 진짜 부담스러웠다. 수영장에서 만난 지 세 번만에 열 명 가까이 되는 대화방이 만들어져 버렸으니까. 괜히 나가기도 애매하고 ‘우리는 전부 다 잘 맞아! 좋은 사람! 우리는 한 팀!’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서, 별로 튀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대와도 친해져야 하는 게 괜히 사회생활의 연장선같았다. 특히 알게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강사에게 모두 만 원씩 걷어 명절 선물을 주자는 여론이 대세였을 때, 불만이 극에 달했지만 어쨌든 냈다. (아직도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는 나보다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 돈을 걷어서 직장인에게? 심지어 강사료도 따로 받잖아! 이걸 선물이라 해야 할지, 갈취라고 해야 할지) 수영이 싫은 건 아니었는데 수영장 안팎의 대화는 힘들다 보니, 슬슬 운동에도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느낄 때쯤 가슴의 종양 수술을 하게 돼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수영을 멀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수영을 그만두게 됐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나 모순적이다. 막상 크로스핏을 시작했더니 가끔 눈인사를 나누고 함께 서로의 운동을 보조해주는, 어색하지 않은 운동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다. 매일 혼자서 운동하는 거 좋은데, 좋지 않아. 여자들의 땀내 나는 우정 같은 걸 바라진 않았지만, 쇳덩이만 가득한 고립무원도 바라지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어느샌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걱정하며, 방황하는 눈동자를 읽기라도 한 것인지 관장님도 나를 보며 말했다.
요즘 여름휴가 기간이잖아요. 아무래도 다음 주가 되면 다들 돌아오실 거예요.
나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굉장히 외로워 보였나 봐. 나름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구나. 하지만 한 달 동안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은 없었다. 그해 여름은 홀로 무더웠다. 그러다 어느 날,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그녀가 왔다. 그녀는 편의상 ‘리’라고 부르겠다.
리가 처음 왔던 그날의 운동은 400미터 야외 달리기, 로우바 스쿼트 12회, 덤벨 런지 12회, 총 6세트였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크로스핏에서는 야외 달리기를 시작한다. 언젠가 인터넷을 뒤지다가 한 영상을 봤다. 브라질에서 크로스핏 하는 사람들이 야외 달리기를 하는데,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함께 급히 뛰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땐 그걸 보고 웃기만 했는데 직접 해보니 알겠다. 같이 뛰쳐나갈 만했다. 야외 달리기 코스는 크로스핏장 바깥으로 나가 편의점 모퉁이를 돌고, 이탈리아 음식점을 지나 태국 음식점이 나올 때까지 뛴다. 코스별로 야외테이블이 있는데 우리가 뛰기 시작하면 편의점에서 맥주 한잔에 새우깡을 드시던 분도, 풋팟쿵커리와 팟타이를 먹던 사람들도 한 번씩은 힐끔거리며 쳐다보신다. 나는 내가 저기에 앉아있었어도 한 번은 쳐다보고 ‘야 저거 봤어? 아까부터 계속 뛰어’라고 말하며 술안주 삼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달밤에 체조하듯 우르르 뛰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흔한 기회는 아니니까. 구경거리가 되는 일과 상관없이 한국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를 거쳐 태국까지 달리다가 돌아오는 길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실내보다 숨이 더 가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실내에서 트레드밀을 타는 건 뒤처지더라도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함께 뛰는 건 누가 어떻게 얼마나 빠르고 느린지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동시간대 회원들 거의 모두가 나보다 잘 뛰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꼴찌를 맡아둔다. 그리고 리는 첫 시간부터 꽤 잘했다. 나는 30kg를 겨우 들어 올리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리는 오자마자 같은 무게를 들고 스쿼트를 수월하게 해냈다. 리에게 감탄하여 나도 모르게 작게 손뼉 치는 와중에, 서로 눈이 마주쳤고 나는 멍청하게 웃었다. 리는 되게 자연스럽게 웃더라. 평소에 웃는 연습을 좀 할 걸 그랬다.